시(詩)와 식욕(食慾) / 유공희
― 나의 지옥의 계절
이 지상의 생활 30여 년에 곰곰이 생각할수록 분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골수에 마치는 억울한 일은 내 뱃속 한복판에 ‘위(胃)’라고 일컫는 기관이 엄존한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억울한 것은 이 기관이 위와 아래가 터져 있다는 해괴(駭怪)한 사실이다.
꿈에서라도 한번 조물주 어른을 좀 만나 뵈올 수만 있다면 여쭈워 볼 일이 허다한 가운데
이 ‘위(胃)’의 건은 나의 경우에는 제일 안건(案件)이 되리라는 것이 의심 없다.
어느 고귀한 중국의 학자는 ‘서양인은 머리로 생각하고, 동양인은 배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위’ 기타의 복중(腹中)의 기관에 사고(思考)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소위 ‘뱃장’이란 게 행동을 결의하는 원동력이 되는 동양인의 기질을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왕년에 독일에서 발간한 백과사전 중에 ‘하라끼리’(할복(割腹)의 일어(日語))란 말이 나오고
그 실례로서 명치천황(明治天皇)을 따라 순사(殉死)한 내목(乃木)을 잘못 알고 동향(東鄕)(모두 러일전쟁 시의 대장)이라고 기재한 것을 어느 일본 문화인이 언짢게 여겼다는 잡지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동양 족속 중에도 드러나게 맹랑한 종족인 일인(日人)이 자고(自古)로 자살법으로써 할복술을 애용한 것이 독일인에게는 매우 희한한 일로 여겨졌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인(日人)이 이 지상을 하직할 즈음에 그 이름 높은 일본 명도(名刀)로 개구리 배 따듯 제 배를 따 버린다는 풍속은
그들이 ‘위’가 군림하는 배에다 평소에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부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임에 틀림없으나
나의 소견으로는 민망스럽도록 미련한 풍속이다.
서양인의 풍속에서는 이 괴로운 지상을 걷어치울 때 배를 따는 일을 볼 수 없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뜻 있는 자의 할복(割腹)은 더없이 장엄한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아무튼 할복을 하게 되면 제일 정통으로 변을 당하게 되는 것이 담부(膽腑)보다도 ‘위’라는 억울한 기관임이 사실이고 보면 이 지상을 결별하는 마당에 따는 통쾌한 처사이기는 하다.
우리 속담에 ‘배부르고 등 따수면 그만이다’라는 게 있거니와 이는 우리 조상네 백성들이 얼마나 배고프고 등이 시린 생활을 해 왔는가 하는 사실을 방증해 주는 처량한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쑥스러운 인생의 공범자인 우리들의 거개가 이 삭막한 철학의 심각한 신봉자임을 어찌하랴!
지난봄의 어느 봉급날 일이다. 입체금(立替金), 원천세(源泉稅), 회비, 축하비, 기타의 부채를 떼이고
남은 몇 푼을 쥐고 우선 다른 날보다 다소 양미간을 펴고 역시 다른 날보다 가벼운 보조(步調)로 셋방살이 문턱을 넘던 나 자신을 기억한다.
그 몇 푼으로 수일간의 식량과 장작 몇 다발을 사들이고 저녁에는 돼지고기와 소주를 받아다가 반주 두어 잔에 귀한 밥 한 그릇을 깨끗이 치우고 나서는
약간 주기(酒氣)가 돈 기분에 다섯 살 난 정(晶)을 안고 댄스를 한바탕 하고 나서 콧노래까지 해 가며
신문을 펴 들고 자유 민주의 싸움, 단상단하(壇上壇下), 정부 인사, 해외 토픽스, 살인, 강도, 자살, 횡령, 분실광고, 테스토스테롱, 해태캬라멜에 이르기까지 더듬어가다
부지불식중에 모든 문제가 완결(完決)되었다는 듯이, 모든 지상의 모욕(侮辱)에서 해탈이라도 되었다는 듯이 태평(泰平) 자약(自若)하게 마치 도통(道通)한 사람처럼 천연스럽게 잠이 들려고 하던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 도통이 못 된 나는 금방 무덤 속에나 들어나는 것 같은 순간의 불안감에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수작이냐!” 소리없이 뇌까리며 서서히 이 지상에서의 30여 성상(星霜)에 이르는 치욕을 헤아려 보려고 했다.
+ +
가장 저속한 인생의 수용에 대한 이 나의 반항은 이따금 지상에 전락(顚落)한 천사의 수난을 연상시킨다.
그날 밤의 값싼 소주 두어 잔이 마련한 시흥(詩興)이 그다지 유현(幽玄)할 리는 없다.
그날 밤의 나의 흥분은 시흥으로서는 너무도 고적(孤寂)했던 것을 기억한다.
잘못 하계에 떨어진 천사의 비애― 인간이란 것이 자기 자신의 의사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닌 한,
자신에 대한 무엇인가의 감상(感傷)이 없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감상이 아닐까?
이 전락한 천사의 고독과 비애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상상해 보라!
숙명적인 허무와 존재 자체에 대한 분노와 구토가 유일의 생활감정인 인간―
그러나 우리 20세기의 인류의 지성은 이것을 이미 체험하고 실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일찍이 A. 랭보에서 그것을 본 것이나
여하히 조롱(嘲弄)을 받더라도 언제나 인생과 타협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 대하여 그가 견딜 수 없는 증오와 욕설을 퍼부을 때
그는 마치 원죄를 모면한 천사와도 같은 순결한 영혼의 자태를 우리에게 과시하고 있는 듯하다.
횡포(橫暴)한 그는 인간의 생활의 처참(悽慘)에 대한 순치(馴致)로 나타나는 생존에의 참괴(慙愧)한 안이(安易)와
인간을 오뇌(懊惱)에 몰아넣는 모든 조건에 대하여 언제나 사전적(事前的) 승낙을 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현세적 생활을 혐오한 나머지
우리의 이 인생을 바로 ‘지옥(地獄)의 계절(季節)’(Une Saison en Enfer)이라고 했다.
그는 당돌하게도 우리들을 절망시켜 이 지상의 체재(滯在)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우리들에게 자신의 졸렬(拙劣) 비천(卑賤)을 자각시키고 또한 지상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을 볼 수 없는 처참한 걸인(乞人)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이른바 랭보가 우리들 속인에게 베푼 ‘자비(慈悲)’라는 것이다.
저 봉급날 밤의 나의 안면(安眠)을 빼앗아간 것이 바로 이 ‘걸인(乞人)’ 의식이 아니었던가?
이미 가을!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영원의 태양을 서운타 하는가?
우리는 청정한 빛의 발견에 바쁜 몸이 아닌가?
계절 위에서 사멸하는 인간들을 멀리 떠나서……
나는 숙명적인 허무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반역의 숙명을 지닌 저 표랑하는 천사 랭보의 자태를 눈앞에 그려보면서 이상한 향수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이와 같은 향수가 ‘직업’과 ‘가정’과 ‘예절’과 ‘습속’의 구속에서 헐떡거리며 30여 년을 잘도 살아온 이 지상의 자신에 순간 증오를 느끼게 한 것일까?
만일 이 향수가 시에의 각성이라면 시란 우리 ‘생활’을 기절(氣絶)시키고 창백한 인생의 폐허 위에 피는 기묘한 꽃인가?
그러나 내가 이 교란(攪亂)되고 파괴된 이 세속적 무감각의 무거운 장막(帳幕)의 순간의 균열(龜裂)을 통하여 본 것이 희한하게 가치있는 그 무엇이었을망정
제 각기 오랜만에 포만된 ‘위(胃)’의 충족을 즐기며 시체(屍體)같이가 아니라 천사(?)같이 잠든 내 처자가 이 가장(家長)의 불가해(不可解)한 야반(夜半)의 각성을 안다면 또한 얼마나 불안스러웠으랴!
나는 하나의 비극의 그림자가 내 가슴을 스쳐가는 것을 느끼며 좀처럼 잠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청정한 빛의 발견에 바쁜 몸이 아닌가!
계절 위에서 사멸하는 인간들을 멀리 떠나서……’
+ +
나비가 한 마리 창을 넘어서 날아들어 왔었다.
흰 구름같이 아름다운 날개를 솔잎같이 파리한 몸에 달고 있는 것이다.
등불 주위를 미칠 듯이 빙빙 돌아다닌다.
만일 전등이 아니고 촛불이었더라면 불꽃 속에 뛰어들어 타 죽었으리라.
문득 괴테의 『서동시집(西東詩集)』속의 한 편이 생각났었다.
그것은 불꽃에 뛰어들어 타 죽는 나비에서 육신을 태워 영생을 얻는 숭고한 생의 이념을 추상한 것이었거니와 그러나 나는 불에 타 죽는 나비가 아니라 그늘진 차디찬 흙 위에서 개미 떼에게 하얀 날개를 찢기우는 나비를 상상했다.
개미에게 끌려가는 하얀 사접(死蝶)의 날개를 어느 일본 시인은 ‘요트 같다’고 노래했지만
그 광경은 내게는 지상에 연출되는 천의(天意)의 차질(蹉跌)로만 여겨진 것이다.
솔잎같이 파리한 허리에 눈부시게 펄럭거리는 하얀 날개는 인간의 ‘위’가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갈(飢渴)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것은 광명에 대한 갈증, 풍경에의 갈망…….
그날 밤 내 방의 등불빛을 그리며 헤매어 들어와서 잠자지 못한 내 앞에서의 나비의 숨가쁜 비상(飛翔)은 웬 일인지 나에게 광명의 천상에서 전락한 천사의 불안을 방불케 했다.
불행히도 ‘위’에 봉사하는 수류(獸類)가 못 된 내게도 이 천사의 불안이 있어 그렇게 잠자지 못 했던가? 말하자면 저 아름다운 나비의 기갈(飢渴)과 불안이 내 속에서도 펄럭거리고 있었던가?
그러나 어둠과 무료(無聊)가 충만한 지상의 그 밤 나는 결국 나의 무거운 육체를 무덤같이 쓸쓸한 나의 보금자리에 눕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별수없이 ‘위’의 충족과 애매한 육체의 무게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지상을 이별할 때까지 이렇게 하여 몇 번이고 이 지상의 숙명에 묶여서 눈 뜨고 일어나게 되는 허다한 아침을 갖게 될 것이고
나의 향수와 불안이 내 생활의 주조음(主調音)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한 또한 이 지상의 생활을 내게 한없는 비애와 연민의 정으로써 울게 해 줄 무수한 황혼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먼 서쪽 하늘의 저녁놀이 단테의 「지옥편」의 어느 하늘처럼 처절하여질 무렵
별수 없이 램프에 불을 켜면서 측은하게 일종의 구원을 받는 듯한 감회를 맛보며
미칠 듯한 어둠의 카오스와 오직 일창비(一窓扉)를 격하고 한 떨기의 이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둘러싸고 앉아
운명을 같이한 처자와 ‘위’의 충족을 영위하여야만 한다는 삭막한 지상의 행복에 젖을 무수한 황혼이……. (1956. 10. 10.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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