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유공희
눈을 뜨면 아침마다 창밖에 보는 커다란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땅에서 술을 마시고 피었는가
끊어다 놓으면 하룻밤에라도 꽃병의 물을 다 마셔버리겠다
해바라기 속에는 타는 듯한 향기가 있어
황금빛 화분(花粉)으로 상징한 이슬이 빛난다
솔잎같이 파리한 전신도 태워버릴 듯
흰 구름 같은 날개를 펴고 나비가 와서 마시며는
해바라기 속에는 태양을 겨누어 쇄도(殺到)하는 생명이
가득히 솟아오른다
활활 타는 광망(光芒)을 고이고 섰는 데는 힘들어
그러나 오 ‘힘들어’… 여기에 온갖 얘기를
걸고 있으며 자랑스럽구나
동무여!
일찍이 어떤 생명이 위구(危懼) 없는 하루를 바랐으랴
또한 우리의 이 찬란한 각성의 하루를
어이 말로써 풀이하랴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전신을 태워서 살자는 게 아니냐
오 아침마다 나의 이마에 스며드는 새로운 언어가 있으니
그는 핀 대로 핀 그 얼마다 고귀한 욕정의 노래랴
보라, 해바라기는 온갖 잡초를 부시(俯視)하고 자라
하늘 속에서 타는 꽃이다.
(1942. 6.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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