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보며/ 임보
지난 이른 여름 북한산(北漢山) 계곡을 홀로 오르다가 숲속 거목들의 발 밑에 돋아난 이름 모를 한 야생초를 만났다. 그 놈은 예쁘지도 못한, 작은 종(鐘) 모양의 푸른 꽃들을 허리가 휘어지게 매달고 있었다.
하늘을 온통 꽉 메운 수십 척 장대의 거목들, 바로 이들의 독재스런 그늘 밑에서 한 치도 채 안 되는 그 작은 키로 무엇하러 거기서 그렇게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는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그 볼품없는 무명초의 여린 잎이며 꽃망울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그 잡초가 비록 그 크기에 있어서는 거목들에 도저히 미칠 바가 못 되지만 그 형상만은 놀랍게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아니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오히려 저 오리나무나 참나무류 같은 것이 따라갈 수도 없는 신선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에 돌아온 뒤에도 어쩐지 그 잡초가 내 머리를 움켜잡고 놓질 않아, 막내 책상에 꽂혀 있는 식물도감을 꺼내 들고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이름 없는 잡초 고놈의 모습은 화려한 그 책 속에 담겨 있질 않았다.
그리고 한 계절을 보낸 뒤, 어제 다시 북한산 그 계곡을 오르다 문득 그 무명초 생각이 나서 찾아가 보았더니 이미 싱싱했던 잎의 빛깔은 어느덧 퇴색해 있고, 그 파란 꽃들이 돋았던 자리에 노란 씨봉지들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구나, 저 작은 씨방에 그렇게 많은 새끼들을 만들어 담기 위해 지난 계절 내내 저 거목들의 그늘 밑에서 몸을 움츠리고 엎드려 참고 있었나 보다.
우리 생명들이 향해 걷는 길은 초목 군생이 다 마찬가지다. 키 작은 잡초거나 하늘을 덮는 저 거목이거나, 날개 여린 잠자리거나 부리 사나운 독수리거나, 이름 없는 민초거나 왕후장상이거나 우리가 사는 뜻은 우리들의 씨를 만들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돌아가는 길에 그 무명 잡초 씨주머니 몇 개 따다 햇볕 잘 드는 양지 골라 뿌려 주고, 나도 우리집에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 내 씨주머니 아들딸년들 생각하며 지금껏 내가 그렇게 살아왔던 이유도 그렇게 있었던 것을 드디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