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白泉)
임보
내가 자주 다니는 산책로는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북한산 둘렛길을 따라가다
보광사를 감싸고 우측으로 타고 올라 몇 개의 능선을 넘어
세이천(洗耳泉)을 거쳐 다시 솔밭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보광사 뒤에 오래된 한 약수터가 있는데
세이천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을 받아간다.
그런데 그 샘의 이름이 없어 그냥 '보광사 뒤 약수터'라 불러오고 있다.
세이천처럼 무슨 이름을 하나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샘터를 지날 때마다 혼자 웅얼거려 본다.
세이천에 걸맞게 세안천(洗眼泉)이라고 해 볼까?
그러나 소부(巢父) 허유(許由)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세이천 같은 향긋한 어감은 살아나지 않는다.
마치 안질(眼疾)을 치료하는 약수 같다는 별로 맑지 못한 느낌이 든다.
수십 개의 이름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그 앞을 지나다가
얼마 전 마침내 한 이름에 낙점을 찍었다.
'백천(白泉)'이라 부르기로 한다.
백천은 '백수천(白壽泉)'의 준말이다.
백수(白壽)는 99세를 이름이니,
그 샘물을 오래 마시면 장수한다는 뜻이다.
뜻도 무방하고 어감도 괜찮다.
그런데 그 이름을 세상에 어떻게 알린다?
샘 앞에 서서 매일 외쳐댈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