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에 대한 생각
임보
내 발이 맨 처음 만난 신발은 꽃신이었다
조부님이 부드러운 왕골속을 엮어 만든,
꽃처럼 곱게 물을 들인 신발이었는데
명주옷에 대님을 두르고 세배를 다니면
이웃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좀 자라서는 삼과 짚으로 엮은 미투리를,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을 신기도 했다
왜놈들이 판을 칠 때에는 조리*나 게다*를 끌기도 했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고무신이나 운동화에 발을 담았다
군대에서는 군화에 발목이 묶였고
세상에 나와서는 구두에 몸을 맡겼다
내 발에 닳은 소와 말의 가죽이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참 민망키도 하다
요즘 내 신발장에는 여러 켤레의 구두와
워킹화 등산화 슬리퍼 샌들 운동화 부츠 등
수많은 신발들이 북적대고 있지만
내가 다시 신어보고 싶은 신발은
유년의 그 왕골 꽃신인데
왕골도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이젠 만들어 줄 조부님도 아니 계시니
참!
* 조리 : 짚으로 엮어 만든 일본인들의 슬리퍼.
* 게다 : 나무에 끈을 달아 만든 일본인들의 나막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