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밤의 전략 / 임보

운수재 2017. 10. 16. 06:43



밤의 전략

                                                         임보

 


밤의 전략?

[]의 전략이 아니라,

[]의 전략 얘기다

 

조율이시(棗栗梨柿) 가운데서도

대추나 배나 감과는 달리 밤은 좀 헷갈리는

멍청한 과일로 생각했다

 

대개의 과일들은 맛있는 과즙을 동물들에게 제공하고

제 씨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전을 쓰고 있는데

밤은 뭐야? 씨를 통째로 주다니!

 

추석 성묫길에 떨어진 밤톨을 주워담으면서 생각한다

한여름 내내 가시투성이 사나운 밤송이로 지키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가시를 열고 씨를 땅에 쏟는다

 

그런데 뭐야?

사람들은 씨의 단단한 갑옷과 비늘을 벗기고

그 속의 달콤하고 고소한 살을 갈취하지 않는가?

 

차라리 달콤한 살을 만들지 말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도록 했으면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고

순탄하게 종족을 퍼뜨릴 수 있을 텐데. 참 미련한 놈들!

 

그렇게 생각하다, 아차! 내 머리가 띵하다!

그놈들의 고도한 술수를 내 이제야 깨닫노니

지상의 강자 인간들을 부려먹는 그들의 계략을

 

밤의 맛에 홀린 사람들이

산마다 밤나무들을 즐비하게 심어

밤꽃이 필 무렵이면 온 산천이 얼마나 몽롱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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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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