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에세이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6---풍자시들

운수재 2021. 1. 31. 12:05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6

 

5. 풍자시

 

내 시정신의 바탕은 풍자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빈정거림’ 곧 풍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세상을 바라다보는 내 눈도 그렇고, 삶을 대하는 내 태도도 또한 그렇다.

편의상 사회적 풍자시와 개인적 풍자시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사회적 풍자시

 

사회적 풍자성이 짙은 시집은 『황소의 뿔』(신원문화사, 1990.)과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영언문화사, 2002.)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현학적인 사회현상을 풍자한 「파리똥」(『장닭설법』시학, 2007.)부터 읽어 보도록 하자. 제3, 4, 5, 6연의 활자체를 각기 달리 배치했다. 그렇게 한 까닭은 주장하는 논자들이 서로 다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그리 시도해 본 것이다.

 

<파리똥>

 

세상을 이미 떠난

어느 대가의 시(詩) 한 편을 놓고

기라성 같은 비평가들이

화려한 논란을 쏟아냈다

 

문제가 된 것은

시행(詩行)의 중간에 찍힌

하나의 피리어드[종지부(終止符)]였다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갈라놓음으로

시정(詩情)의 미적 확대를 의도적으로 꾀했다.

 

의미의 연결에 포즈(pause)를 줌으로

이미지의 자동화를 방지한 낯선 장치다.

 

복잡다단한 현대 도시 소시민의 순간적인

의식의 단절을 시각화한 것이다.

 

일상적 구문의 해체로 심리적 갈등 곧

정서의 와해를 표출하려 했다.

 

알다가도 모를 현학적인 해설들이

작품보다 더 어렵게 지상을 수놓았다

 

거기에 왜 마침표가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해도 이해를 못한 한 숙맥 시인이

출판사에 찾아가 대가의 친필 원고를

가까스로 찾아보았다

 

원고에 분명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침표의 생산자는 대가가 아니라

한 마리의 불손한 파리였던 것을

세상은 아무도 몰랐다)

 

[설명]

세상을 떠난 한 대가가 남겨 놓은 시 한 편을 놓고 비평가들이 여러 가지 논란을 펼치고 있는 장면을 희화한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글의 수식어와 피수식어 사이에 찍힌 낯선 종지부(마침표)다. 거기에 마침표( . )가 들어감으로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가를 비평가들은 현학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다. 실은 그 마침표는 대가가 아닌 파리가 생산한 것인지도 모르고…

 

다음의 작품 「닭똥」(『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영언, 2002.)은 가치 평가의 척도를 잃고 우유부단 부화뇌동하는 우중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닭똥>

 

<닭똥>이라는 국산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한결같이

허황된 환상이라고 내돌렸다

관중들도 덩달아 재미없다고 외면했다

 

다만

서울의 한 순진한 교사가

이 영화를 보고

먼 낙도의 외로운 초등학교로

짐을 싸들고 떠났다

 

<닭똥>을 만든 영화사는

죽을 쒔다고 투덜거렸다

주연급 배우들은

다음의 일거리를 못 얻어 울상이었고

감독은 소주를 마시며

고독을 달랬다

 

그런데

한 일 년쯤 지난 후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베니스 비엔날레 영화제에서

<닭똥>에게 그랑프리를 씌웠다

 

이 뉴스가 온 세계 통신사들을

뒤흔들었을 때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극장들은 서로 <닭똥>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고

군중들은 <닭똥>을 보려고

새벽부터 장사진을 쳤다

 

그러자

평론가 양반들도 남 뒤질세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닭똥>의 모든 스탭들을 칭찬했다

 

감독은 여전히 소줏병을 기울이면서

<닭똥>들이나 먹어라고 중얼거렸다.

 

[설명]

현대 문명사회에서 대중들을 움직이는 것은 매스컴과 상표다. 매스컴에서 떠들면 하루아침에 일약 유명해지기도 하고 잘 알려진 상표는 민중들의 구매력을 유발한다. 무명의 배우도 큰 상을 타게 되면 일조에 이름을 얻기도 하고, 팔리지 않던 작품도 국제적인 상을 받게 되면 금방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작품 「닭똥」은 우중들의 그러한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다음 「세상을 밀고 가는 힘」(『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영언, 2002.)은 우리가 평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세상의 역기능들이 있어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역설이다. 고통과 악과 불륜과 부정(不正)과… 그런 부정적(否定的)인 것들이 있어서 긍정적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잘 움직여 간다는 주장이다.

 

<세상을 밀고 가는 힘>

 

여름은 더워야 맛이고

개는 짖어야 한다

잡초는 뽑아내도 계속 자라야만 되고

아이들은 늘 무릎이 깨져 있어야 제격이다

바람둥이 여편네는 남몰래 서방질을 하고

사기꾼은 사기를

중은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을 두어야 하리

이것이 제대로 굴러가는 세상이다

 

만약, 어느 날 문득

여름이 여름처럼 덥지 않고

시끄럽던 개들도 입을 다물고

김맨 자리에 잡초도 다시 돋아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이들도 어른처럼 점잔을 빼고

바람둥이 여편네도 두문불출 요조숙녀가 되고

사기꾼들은 모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중들도 목탁만 열심히 두드린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흔들리는 갑판처럼 거리는 뒤뚱거려

사람들의 발걸음은 휘청거리고

부질없는 만남들로 흥청대던 도시는

이제 극지의 설원처럼 적막해지리라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파탄이다

세상을 이처럼 재미있게 한 것들의 절반은

세상을 이만큼 버티게 한 것들의 절반은

우리가 평소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저 거칠고 불손한 것들임을 기억해야 하리.

 

[설명]

다음의 작품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는 비법」(『아내의 전성시대』시학, 2012.)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거대한 대륙을 점령해서 큰 나라를 만들고 있는 미국을 빈정대는 노래이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는 비법>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열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른 다음

그 자녀들에게 또 열 명씩의 자손을 낳게 하고

그 자손들에게 또 열 명씩의 자손을 낳게 하는

엄격한 계명을 세우라

 

그리하면

10세대가 지난 300년 후가 되면

그대의 후손들이 10의 10승― 물경 100억이 된다

그 100억의 후손들 가운데 하나를 내세워

대통령을 만들면(미국은 민주주의니까)

아메리카 대륙은 바로 그대의 것이 된다

 

대륙을 점령하는 가장 큰 무기는

무력과 재력이 아니라

인력 곧 사람의 숫자다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 땅의 주인도

그들이 아니었으니까

 

[설명]

다음 「우리들의 새 대통령」(『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영언, 2002.)은 우리나라의 이상적인 새 지도자를 염원하는 기도문과 같은 시인데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는 허황된 소망이다. 정치인들이 지니고 있는 많은 결점과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여 민중의 지팡이가 될 ‘성군(聖君)’을 꿈꿔 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현 정치인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새 대통령>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 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낭독하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

 

말 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 주는

 

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대기도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처럼 무서운

 

야당의 무리들마저 당수보다 당신을 더 흠모하고, 모든 종파의

신앙인들도 그들의 교주보다 당신을 더 받드는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장에서는 어려운 관계의 수뇌들까지도

서로 손을 맞잡게 하여 세계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어느 날 청와대의 콘크리트 담장들이 헐리고 개나리가 심어지자

세상의 담장이란 담장들은 다 따라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더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당신이 수제비를 좋아하자, 농부들이 다투어 밀을 재배하는 바람에

글쎄,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밀 생산국이 되기도 하는

 

어떠한 중대 담화나 긴급 유시가 없어도 지혜로워진 백성들이

정직과 근면으로 당신을 따르는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

그러한 우리들의 새 대통령

 

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2) 개인적 풍자시

 

개인 풍자시의 주 모델이 된 인물은 아내다. 아내는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인물이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화(筆禍)의 염려도 거의 없으므로 즐겨 다루는 대상이다. 시집 『아내의 전성시대』(시학, 2012.)에 많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에 인용할 세 작품들은 다 앞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아내의 전성시대>

 

왜 법대생들이 그렇게 좋아했던가 몰라요

고시공부 하는 놈들이 공부는 않고 쫓아다니기만 했으니

 

아내의 회고담이 또 시작된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투다

‘법대생'이라는 말도 내 비위에 거슬린다

지금쯤 잘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떵떵거리며 지내지 않겠는가

(하기사 못 된 놈은 복덕방에서 어정거리고 있겠지만)

 

키는 180도 넘은 멀대같은 놈들이 늘 따라다녔단 말이요

 

키가 180이라는 말에 또 야코가 죽는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대꾸도 않고 숟가락질만 해댄다

수십 번을 들은 얘기이므로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미련이 있는지

오늘도 점심을 먹다말고 어떤 친구 얘기 끝에

그녀는 자신의 황금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대문 밖에까지 따라와서 어정거리니 어쩌겄오?

 

다음엔 삼촌이 나와서 쫓아 보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 다음엔 장인이 법대학장에게 전화를 해서

그놈을 혼내 주었다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맨 끝에 있다

 

아니, 그 멀대같은 놈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충장로를 헤매고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었다쟎아요

 

말하자면 그 법대생이 상사병이 들어 실성했다는 얘기다

자신은 한 사내를 미치게 할 만큼 매력덩이였다는 메시지다

그 얘기를 한평생 반복해서 중얼거린 까닭은 무엇인가?

고희에 올라선 저 노파 맺힌 한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만약 세월을 다시 거슬러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마도 아내는 180의 법대를 선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나 좀 가져 와!

아내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수저를 놓는다.

 

[설명]

내 아내의 전성시대는 시집오기 전 처녀시절이다. 자기를 좋아해서 법대생들이 줄줄이 쫓아다니던 시절이 아직도 눈에 삼삼한 모양이다.

 

<아내의 해탈>

 

아내가 소녀 시절엔 얼마나 결벽했던지

남의 집에 가서도 자신의 숟가락이 아니면

통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니

여타는 말을 안 해도 짐작이 간다

 

성미가 까다로워 아무나 사귀지 않았고

구미가 까다로워 아무거나 먹지 못했다

그래서 처녀 시절 아내의 별명은

'쌩콩'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젊었던 시절

우리 집 걸레는 늘 백옥처럼 희었다

사흘이 멀다고 삶아 대니

제가 어찌 검을 새가 있었겠는가?

 

그러던 아내에게 언제부턴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머리털이 세고

치아가 부실해지던 무렵부터였으리라

 

화장실 문을 개방한 채

일을 보시는가 하면*

식탁, 안방 가리지 않고

틀니를 함부로 빼 놓으신다**

 

이젠,

성스러움도

수줍음도 다 털어 버린

해탈 여장부가 되셨다

 

그런데 한 가지 곤혹스런 일은

가끔

주어(主語)가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물론 당신께서야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

* 딸애가 지나다 기겁을 하고 문을 닿으면 갑갑한데

왜 닿느냐고 야단이다.

* 네 살짜리 손주 애가 이를 보고 마귀 이빨이라고 놀려 댄다.

* ‘아무개가 어떠어떠하다.'고 얘기할 때, ‘아무개'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어떠하다'고만 말하는 생략 어법.

 

[설명]

여인이 나이 들면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특히 늙음의 징조를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아내가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위를 해 보지만 그 적막함을 달랠 길이 없다.

 

다음의 「필봉(筆鋒)」은 ‘나’의 무능을 한탄하는 글인데 ‘아내’를 희생양으로 등장시킨다.

 

 

<필봉(筆鋒)>

 

붓이 창보다 무섭다고 한다

언론의 힘을 갈파한 말이다

 

예리한 필봉에 찔리면

하루아침에 재벌도 무너지고

재상도 목이 달아나는 수가 있다

 

그러니

붓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는

붓의 힘만 믿고

한평생 그놈을 붙들고 필력을 길렀다

 

전가(傳家)의 보검(寶劍)을 꿈꾼

광야의 검객처럼

허공을 베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은 내 필봉을 거들떠도 안 본다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겁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붓이 너무 무딘 걸까?

 

지금껏

내 필봉에 떠는 사람은 오직 하나

 

자신의 얘기를 함부로 세상에 떠벌리지 말라고

애걸하는

 

허약한

내 아내가 있을 뿐이다.

 

==================================

* 월간 <우리 시> 21년 2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