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비판
정지용의 <향수>
운수재
2007. 4. 1. 09:21
정지용의「향수」/ 임보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은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가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전문 「鄕愁」는 1927년 3월에 『朝鮮之光』65호에 발표되었지만 작품의 제작 년대는 1923년 정지용(1902∼?)의 나이 22세, 휘문고보를 졸업할 무렵쯤으로 추정된다. 초창기의 작품인데도 그의 문학적 재질이 충분히 드러나 있는 가작이다. 더욱이 이 「향수」는 노래로 불려지면서 정지용의 작품 중 대중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다섯 장면의 정겨운 고향 정경들을 병치해 놓은 단순 구조로 되어 있다. 정경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는 없다. 다만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행이 각 연의 끝에 독립적으로 반복되면서 그리움의 정감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연들 사이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 제1연은 넓은 들판에 실개천이 흘러가고 황소가 평화롭게 느긋한 울음을 울고 있는 정경이다. 마을 앞에 시원히 펼쳐진 들녘의 원경인데, 이 작품의 서곡에 해당된다. 제2연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다. 늙은 아버지와 겨울밤의 시간적 배경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쓸쓸함보다는 원시농경사회의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제3연은 화자 자신의 유년이 대상이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속에서 노루처럼 뛰어다니던 한 시골 소년의 야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 신선함이 봄 아침을 연상시킨다. 제4연은 신비롭고도 발랄한 누이와 소박하고도 근검한 아내를 추억하는 장면이다. 이삭을 줍는다고 했지만 가을이기보다는 싱그러운 여름을 느끼게 한다. 보리이삭을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5연은 천상의 별들과 까마귀의 비상을 배경으로 가난한 집이 조감되고 있다. 그러나 그 집은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불빛에 새어나오고 있는 단란한 가정이다. 추수가 끝난 뒤의 평화로운 농가를 연상케 한다. 제1연의 지상적 조망(眺望)과 대조가 되는 천상적 조감(鳥瞰)의 구조다. 이 시의 구성요소들을 정리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도표를 넣을 수 없어 생략함> 각 연의 시간적 배경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것을 알 수 있다. 제1연은 겨울을 제외한 어느 계절을 배경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외의 다른 연들에는 사계가 적절히 안배되고 있다. 하루를 배경으로 한 것도 아침에서 심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간적 배경도 그런 대로 다채롭게 선택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등의 화려한 수사가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석근 별'과 같은 생소한 표현이나 '얼룩백이 황소'와 같은 부자연스런 표현의 문제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향을 노래한 이 작품의 결정적인 아쉬움은 '어머니'와 '친구'의 부재(不在)라는 사실이다. 고향을 그리는 노래에서 어머니와 친구가 선택되지 않은 것은 어떤 까닭이 있었던 것일까? 대개의 경우 고향과 어머니는 동일시되는 회귀지향의 절실한 대상인데 그런 어머니가 '고향'에서 제거된 이유가 무엇일까? 정지용은 12살의 어린 나이로 동갑인 신부를 맞아 조혼을 했는데 14살에 서울로 유학을 떠나왔다. 그리고 8년 뒤에 이 작품을 쓰게 된다. 혹 고부간의 심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무의식중에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제대로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던 외톨박이는 아니었던가. 그런 추측들을 해보게도 된다. 아무튼 '어머니'와 '친구'의 부재는 망향가로서의 능률적인 구조에 결손으로 작용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제2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제3연에서 '나'와 더불어 '친구'를 함께 노래했더라면 더 조화롭고 효율적인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약관의 젊은 나이에 생산된 작품을 놓고 완벽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감히 선인의 작품에 손을 댄 불경을 송구히 생각하면서 제2연과 제3연을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바꾸어 읊조려 본다.(청색 부분 필자가 첨부한 것임)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고/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면/ 길쌈하신 어머니 곁 호롱불은 흔들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친구와/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