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서정주의「국화 옆에서」 / 임보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닢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었나보다
「국화 옆에서」는 1947년(『경향신문』11월 9일)에 발표된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당(1915∼2000)의 30대 초반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탄력있는 구성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미당이 서거하기 전후 그의 행적을 문제삼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작품을 놓고 친일시니 혹은 이승만을 노래한 시니 하며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작품 가운데 '노오란 꽃잎'의 그 황국(黃菊)은 일본 황실의 문장(紋章)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전제하면서 국화꽃 탄생의 요인으로 제시된 소쩍새, 천둥, 먹구름, 무서리 등의 시어들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태양신 아마테라스 천황의 탄생 신화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승만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는 이 작품이 발표된 1947년 미당은 당시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장인 윤보선(민중일보 사장)의 주선으로 이 박사와 자주 만나 대담도 하고 자료를 모아 이승만 전기를 집필했다고 밝힌다.
후일 이 박사를 회고하는 수필에「이승만 박사의 곁」이 있는데, 제목들 중의 '곁'과 '옆'의 표현에도 주목할 일이라고 한다.
첫째의 경우, 이 작품을 친일시로 보려는 견해는 온당치 못하다.
광복 이후에 굳이 친일시를 썼을 까닭이 없다.
만일 광복 이전에 쓰여진 작품이라 하더라도 광복 이후에 발표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리고 일본 황실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입장에서 볼 때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여인'에의 비유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역경과 고난을 암시하는 소재들의 유사성은 개인과 민족을 초월한 원형심상으로 그 가능성을 설명할 수 없는 바가 아니다.
설령 미당이 일본의 신화적 구조에서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표절이 아닌 새로운 시작품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그 문학적 가치를 따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둘째의 경우, 역경을 딛고 일어선 독립투사로서의 이승만을 노래했다고 보는 견해다.
만일 이승만을 국화에 비유했다면 그 국화는 오상고절의 전통적 이미지를 빌어 표현했을 것이다.
권능의 한 정치인을 젊음의 방황길에서 돌아온 여인에 비유했다면 이는 넌센스다.
보통의 재능을 가진 시인에게서도 그러한 발상은 기대될 수 없거늘 하물며 미당이 그러한 우를 범했을 리가 없다.
이 작품은 생명체의 신비한 형성과 그 성숙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미당 자신이 밝힌 것처럼 이 작품의 모티브는 중년기에 접어든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그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국화를 매체로 해서 그리고 있다.
여기서의 국화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국화 대신 가을철에 피어나는 다른 꽃이나 혹은 과일들 예컨대 사과나 감이나 모과와 같은 열매로 대치해도 상관없다.
이 작품의 제목이 「국화」가 아니고 「국화 옆에서」인 것임을 미루어 보아서도 국화가 주대상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하나의 생명체는 전 우주적인 모든 요소들의 총체적인 통합에 의해 형성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뿌리로는 물을 위시해서 얼마나 많은 흙 속의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잎으로는 햇빛과 공기 등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흡수해 들이는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삼라만상들 가운데 한 생명체의 성장에 관여하지 않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시인은 한 생명체의 내부를 직시하면서 그것을 형성케 했던 과거의 회로들을 통찰한다.
그 뒤얽힘의 복잡한 회로의 가닥을 미당은 '소쩍새'와 '천둥'으로 명명했다. 국화가 생명체의 대유인 것처럼 소쩍새나 천둥 역시 생명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사물들의 대유에 불과하다.
소쩍새나 천둥 대신에 다른 매체를 끌어들여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제3연에서는 순탄치 못한 생명의 길을 걸어 성숙에 이른 순치된 아름다움을 여인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제4연에 가서는 생명(국화)과 자연(서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체인 나도 객체인 국화의 형성에 기여하는 요소이며 상호 통합의 공동체임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조를 지닌 명작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제3연의 끝에 사용된 직유다.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설명적인 직유가 작품의 긴장을 그만 맥없이 풀고 만 기분이다.
그보다는 그냥 '내 누님이여'라는 은유적 표현이 보다 더 절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줄이면 7·5조류*가 주도하고 있는 이 작품의 율격 구조가 허물어진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님'의 자태를 드러내는 수식구를 앞에 붙여 리듬의 단절을 막을 수도 있으리라. 청초하고 우아한 중년의 여인을 어떻게 그리면 좋겠는가.
미당이 이 부분을 다시 고쳐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그가 평소에 즐겨 쓰던 '눈썹'을 다시 끌어왔을지도 모른다. '눈썹도 푸른 내 누님이여'라고….
* 7·5조류 : 필자는 소위 7·5조와 더불어 이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8·5, 6·5, 5·5 혹은 7·7, 7·6, 7·4 등을 포괄하여 '7·5조류'라고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