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7. 4. 8. 05:38

 

 

우백(雨白)          /      임보

 

 

운곡韻谷이라는 곳은 


높은 산도 긴 물도 없다


풍광風光도 보잘 것 없고


희귀한 특산물이 나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그곳에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이 찾아오는 까닭은


한 그루의 나무를 보기 위해서인데


우백雨白이라는 천년 묵은 측백나무다


어느 때부터인지 이 나무가 조화를 부리기 시작해서


바람이 불면 이 나무에서 악기의 소리가 나는데


거문고 소리 같기도 하고


비파 소리 같기도 한


신묘한 가락이 은은히 흘러나온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수천의 군중들이 밤낮없이


그 나무의 주위에 진을 치고 야단법석이다


사람들의 발길에 우백雨白의 뿌리는 드러나고


사람들의 손길에 우백雨白의 몸통은 말이 아니다


도대체 저렇게 시달려 어이 견딘단 말인가


재인과才因禍(재주가 화를 부른지고)로고!


한 노인이 혀를 차면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