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이용악의 <다리 위에서>

운수재 2007. 4. 27. 06:50
 [명시감상]

이용악의「다리 우에서」 /   임보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어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어가는 다리 우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히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버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사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다리 우에서」전문


 이용악(李庸岳, 1914~?)은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의 상지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24, 5세에 처녀시집『분수령』(삼문사,1937)과 제2시집『낡은 집』(삼문사,1938)을 연이어 간행했다. 제3시집『오랑캐꽃』(아문각, 1947)과 제4시집『이용악집』(동지사, 1949)은 광복을 맞은 뒤에 출간되었다. 광복 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6․25동란 중 월북하였으나, 1953년 숙청 대상으로 지목되어 한때 집필금지의 규제를 받기도 했다.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1956) 등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북에서의 그의 문학적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용악 시의 특징은 한 마디로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적 관심은 개인이나 사회의 고뇌로운 현실적 삶이었다. 가정적으로 그는 아버지를 일찍 잃은 결손가정으로서의 비극성을 안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조국을 잃은 망국민으로서의 치욕적인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곤궁한 가족사적 이야기나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유민(流民)들의 비극적인 생활상이 주조를 이룬다.

 시집『오랑캐꽃』에 수록되어 있는「다리 위에서」는 그의 유년의 곤고했던 삶을 회고하는 작품이다. 제2연의 1, 2행만 현재의 정황이고 나머지는 다 과거에 대한 기술이다. 성인이 된 화자가 문득 국수가 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국숫집을 찾아간다. 국숫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과거를 회상한다. ‘누나도 나도 어렸을 땐 국숫집 아이였다.’고―.


 이용악의 집안은 조부때로부터 상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조부는 소달구지에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나들며 금(金)으로 바꾸어 오는 일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조부의 뒤를 이어 이런 일을 하다가 객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국수장사․떡장사․계란장사 등을 하면서 어렵게 5남매를 길렀던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면 처마 끝에 장명등(長明燈)을 밝혔던가 보다. 이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걸음을 비추어 주는 외등이면서 또한 국숫집임을 알리는 시그널이기도 했으리라. 그 등(燈)이 거센 바람 때문에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꺼진다. 화자는 당시의 혹독했던 시대적 배경을 ‘겨울밤 거센 바람’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연약한 그 등불은 위태롭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상징물로 읽을 수 있다.

 자주 꺼진 불을 다시 붙이기 위해 남매가 궤짝을 밟고 올라선 것으로 보아 그들은 10살 미만의 어린이였던 것 같다.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쳐든 누나의 시야에 밤하늘의 별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마 깊은 호수 위에 거꾸로 매달린 듯 현기증이 일었으리라.

 ‘어머니의 국숫집’은 연중 무휴로 영업을 했던 것 같다. 단오나 설 같은 명절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해도 화자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어머니의 시중을 들어야만 했으리라. 그런데 일년에 꼭 하루 국숫집이 쉬는 날이 있다. 그날이 곧 아버지의 제삿날이다. 그날은 풀벌레도 쓸쓸히 울어대는 가을철이다. 어린 자식들은 어머니를 따라 어른처럼 곡을 했다. 그날은 어쩌면 온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통곡으로 슬픔을 달래는 공인된 ‘울음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용악은 제삿날 우는 그의 어머니의 눈물을 ‘박꽃 속의 이슬’이라고 다음과 같이 청렬하게 읊고 있다.


달빛 받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달 있는 제사」전문

 다시 원시로 돌아가서,

 화자는 지금 국숫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에 서 있다. ‘국숫집’은 화자의 유년이다. 국수를 먹고 싶다는 것은 그 유년을 향한 그리움의 발로다. 국숫집이 있는 다리 저쪽은 과거이고 화자가 걸어온 다리 이쪽은 현재다. 그러니 ‘다리’는 화자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고 있는 의식의 공간이다. 그는 그 공간에 잠시 서서 과거를 조망한다. 비록 곤궁한 유년이었을망정 가족들이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았던 그때가 그립다고 고백하고 있다.

 비극적인 과거를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감동적인 소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