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자연학교
무녕왕비의 어금니
운수재
2007. 5. 21. 04:53
무녕왕비의 어금니 / 임보
겨우 천 년이 흘러간 뒤
모든 것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상의 그 웅대했던 대궐
문무백관들의 장중한 도열
천금의 옥새와 만금의 실록들도
이제는 다 찾아볼 길 없다
용안을 장식했던 눈부신 금관
용포를 감았던 옥구슬의 띠
천하를 흔들었던 화사한 보검
그런 것들의 썩은 파편들만
흔적으로 조금 남아 있을 뿐
그것들의 임자
이 무덤의 주인
그 임금의 살과 뼈는 아무 데도 없다
그의 곁에 나란히 누운 왕비의 육신도
종적이 묘연쿠나
금은 보석의 장신구들도 녹슬어 삭고
굳은 토기들도 부서지고 뭉개졌네
겨우 천 년
지상의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땅 속의 것들도 그렇게 변했구나
그런데 저 한 귀퉁이
반짝이는 저것은 무엇인고?
진열장의 표찰에 기록되길
무녕왕비의 어금니
괴이키도 하구나 무슨 까닭인가
육신의 살과 뼈 다 사라진 뒤
이(齒) 가운데 그 한 놈 어금니 남아 있는 건
무슨 연고란 말인가
옳거니, 그럴 일이로다
삼천 궁녀들에게 낭군을 빼앗긴 한(恨)
절절히 육신에 배어 어금니 악물고 살았거니
사후(死後)나마 님의 몸 지키려는 서릿발이로세
천 년 세월도 못 허문 여자의 마음
백제의 궁성보다 더 굳세게 반짝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