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7. 5. 25. 06:16

 

 

교행(交行) /  임보

 

 

나는 열차에 편안히 누워 가고 있는데

그는 봇짐을 등에 지고 뙤약볕에 걸어오고 있다

 

나는 천진(天津)에서 심양(沈陽), 연길(延吉) 쪽으로 달려가는데

그는 압록(鴨綠)과 요하(遙河)를 건너 북진(北鎭)을 향하고 있다

 

나는 남의 나라를 넘어 내 나라를 보러 가고

그는 우리 땅을 건너 남의 땅을 보러 온다

 

내가 타고 가는 시간은 1993년 여름 이미 지명(知命)

그가 걷고 있는 시간은 657년 여름 겨우 불혹(不惑)

 

천 년을 서로 끌어당겨 우리가 만난 곳은

끝도 갓도 없는 요동(遙東)의 광야

 

태양은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바람은 구름처럼 모래먼지를 일으킨다

 

옥수수 밭에서 하룻밤 묵은 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서라벌로 되돌아선다

 

돌아가는 이유를 다잡아 물었더니

너처럼 타고 갈 것이 내겐 없지 않느냐

 

나도 도문(圖門)까지 갔다가는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