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7. 7. 24. 07:55

 

복조리  /   유공희

 

아내는 나무와 꽃과 돌을 좋아한다.

30평 정도의 정원에는 그래도 크고 작은 상록수와 꽃나무들이 적절히 안배(按排)된 수석(水石)들과 어울려 오붓한 산수를 이루고 있다.

아내는 일을 하다가도 이 조그만 정원에 나와 서 있기만 해도 금방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남 못지않게 산수를 좋아하는 나지만 아내의 자연물에 대한 알뜰한 애정에는 언제나 고개가 숙는다.

아내는 나처럼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귀여운 아들 딸 보살피듯 하는 것이데,

이 조그만 정원을 정원사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손수 설계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하는 적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살림에 시달리는 아내로서는 이 지구 위에,

더구나 서울 같은 만원 도시에 조그만 정원이 내 것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적같이 여겨진다고 흐뭇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는 아내의 요즈음의 하루 생활은 조그만 정원의 구석구석에 잠자고 있는 봄의 숨결을 살피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밤사이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나 둘 깨어나는 봄소식을 아내는 나뭇가지에서, 바위틈에서, 잔디밭 사이에서 남몰래 만나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달 가까운 휴가 중에 게으름만 늘어, 마음 놓고 늦잠을 즐기는 나에게 이슬에 젖은 조간신문과 함께 그런 봄소식을 한두 가지씩 전해주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구정(舊正)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도 다름없이 정원에서 봄을 찾아 서성거리던 아내는 엉뚱한 것을 들고 들어와서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예쁜 꽃리본으로 묶은 한 쌍의 복조리를 내밀어 보이면서 “여보! 누가 이걸 잔디밭에 던져 놓았어요” 하더니 곧 아이들 방으로 달려가며 “얘들아! 누가 복조리를 잔디밭에다…” 하며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을 손에 쥔 듯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복조리 사려어―” 하고 외치면서 팔고 다니던 것을 이제는 집집마다 던져 놓고 나서 나중에 값을 받으러 오려는 얄팍한 수작이거니 해서 오히려 마음이 떨떨해지는 내 눈에,

생활의 길사 흉사에 대해서 병적일 만치 섬세하게 지레 반응하는 아내의 심리가 새삼 측은해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튼 날아든 것이 ‘복 조리’이니 새해를 맞는 마당에서, 나는 “올해는 우리 집에 큰 복덩어리가 굴러들려나 보오”하고 일장의 연기로써 응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달리 꿈을 잘 꾸는 아내요, 아침이면 곧장 무슨 여성잡지의 부록인 ‘해몽사전’을 들추는 아내다.

한번은 내가 만년필이 부서지는 언짢은 꿈을 꾸었노라고 했더니 “그 만년필이 둘로 딱 부러집데까, 바삭바삭 조각이 납데까?” 하고 대들 듯이 물었다.

둘로 딱 부러지더라고 했더니 “어마나, 거참 좋은 꿈을 꾸셨구료!” 하면서 박장일소를 하는 것이었다.

병인이 반 의사가 되어 가는 이치로 아내의 해몽학(解夢學)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복조리 안에는 성냥을 담아두어야 좋은 법이라면서, 내가 더러 맥주홀에서 얻어다 둔 새 성냥 두어 갑씩을 조리 안에 담아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아내를 나는 미욱하다고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꽃망울 하나에서도 봄을 보려고 정원을 서성거리는 아내, 가정의 행복을 걱정하면서 ‘해몽사전’을 들추는 아내, 복조리에 성냥을 담는 그런 아내를 미워할 남편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복조리가 날아든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밤에 도둑이 들었다.

전에도 더러 도둑이 든 일이 있었지만 이번 도둑은 이상하게도 들어오기는 분명 들어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내는 정원에서 봄을 찾다가 내 머리맡에 조간신문을 갖다 놓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지하실 쪽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다가 자세히 보니 안에서 잠근 빗장이 무참하게 뻐드러져 있었다.

깜짝 놀라 둘레를 살폈더니 큼직한 농구화 자국이 주방 바닥 여기저기 눈에 띄고, 아이가 지하실에 내려가 보았더니 바닥에 똥을 한 무더기 싸놓았더라고 집안이 온통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둑맞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기차다는 것이다. 느지막이 현장에 나타난 나도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식구들의 억측은 구구하였다. 일단 정찰만 하고 간 것이니 반드시 한 번 더 올 것이 틀림없다…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인기척을 듣고 뺑소니쳤을 것이다….

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하여 거사 전의 액(厄)막으로 대변까지 차분하게 배설하고 나서, 재물에는 손 하나 대지 않고 발자국만 찍어놓고 표연히 떠나버리는 그런 도둑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

도둑맞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미상불 불행 중 다행한 일이기는 하나, 나는 그보다도 무엇이 그 도둑의 도심(盜心)을 멍들게 하였는지가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바로 엊그제 밤에 풀린 것이다.

 

나는 밤의 시간을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밤의 고요 속에 싸인 등 밑의 아늑한 시간을 좋아한다.

어둠의 홍수가 온 세상을 삼키고 있는 동안에도, 내 방안의 이 따스한 등 밑의 시간 속에 깨어 있으면 마치 ‘노아의 방주’를 탄 듯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예부터 이름난 내 늦잠 버릇은 이렇게 밤을 아끼는 생리에서 싹튼 것이다.

그날 밤도 자정이 지나도록 책장을 뒤적거리고 있자니 문득 출출해지면서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꽃잠이 들어 희한한 길몽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아내를 깨우기가 민망해서 살금살금 주방으로 들어갔다.

도둑질하듯 조심조심 찬장문을 열고 묵은 포도주병과 글라스, 서랍을 뒤져서 비닐봉지에 담긴 어포조각을 꺼내 놓고, 마치 아담한 스탠드 바를 혼자 독점한 기분으로 한잔 한잔 기울이고 있으려니,

도둑이 든 시각도 이때쯤이었으리라는 생각에 이어, 문득 한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해서 도둑질을 하는 것도 꽤 재미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스릴이 넘치는 작업일 것이 틀림없고,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또 기막힐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쾌감 때문에 도둑질을 못 놓는 ‘도둑 에피큐리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새삼스럽게 나는 아내가 다스리는 주방의 이 구석 저 구석에 눈을 옮겨 본다.

이상하게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인다. 주방 안은 아내가 가꾸는 정원과도 같은 분위기라고 느껴진다.

적당한 장소에 적절히 놓여 있는 기물들, 찬장 미닫이 안에 예술품처럼 정돈되어 있는 온갖 기명들이 참 아름답고 예뻐 보인다.

뒤주 위에 크기 순서로 나란히 놓여 있는 까만 곱돌냄비들이 재미있다.

모든 것이 독특한 표정을 지니고 다소곳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얼굴들이다.

그러자 내 눈은 환한 반가움에 번쩍 떠졌다. 뒤주 위의 벽 공간, 꼭 좋은 그림 한 폭 걸었으면 하는 자리에 꽃리본으로 묶은 한 쌍의 복조리가 참 어울리게 걸려 있는 것이다.

성냥 두 갑씩 들어 있는 그 복조리 한 쌍….

이윽고 나도 모르게 ‘알았다!’ 하는 소리없는 환성이 가슴 한 구석에서 터지는 것을 느꼈다.

그 도둑의 마음속에 도심(盜心)을 멍들게 한 것은 바로 저 복조리인 것이다!

저 복조리에서 선연히 풍기는 한 주부의 기원…. 내 가정의 행복을 비는 한 여자의 애절한 기원이 그 도둑의 마음을 어루만져 ‘사람’의 마음이 움트게 한 것이 아닐까?

핏기가 가신 그 도둑의 두 눈은 정원에서 꽃망울을 들여다보는 아내의 눈만큼이나 티없는 눈이 되어 저 한 쌍의 복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가 슬그머니 발길을 돌린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떠난 뒤가 그렇게 말짱하고 고즈넉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왠지 자꾸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묵은 포도주 덕만은 아니었다.

‘인간부재(人間不在)’라고 떠드는 세상에서 나는 한 절도 미수범의 가슴속에 건재하는 ‘인간’을 역력히 본 듯한 실감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야반에 혼자 무시로 미소를 지으며 연거푸 잔을 기울이는 주방 안의 사나이는 실성한 호주가(好酒家)가 아니었다.

거나해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의 잠은 함박꽃처럼 무르녹아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다.

그녀가 한창 누리고 있을지도 모를 희한한 길몽을 방해할세라 조심조심 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온 가족에게 그 도둑이 빈손으로 돌아가 버린 비밀을 소상히 밝혀 궁금증을 풀어 주리라고 마음먹으면서…. (1976. 수필문학,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