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시간의 거리 / 임보
공간과 시간의 거리 / 임보
―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해설
그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고
묻기에
동東은 아침인데 서西는 저녁이고
남南은 여름인데 북北은 겨울이라고
대답했더니
토공土公이 웃는다
그의 집 뜰은 한 십여 평 되는데
하루에 만 리를 달리는 그의 말馬도
뜰 좌편의 자작나무 한 가지 끝에서
뜰 우편의 돌배나무 한 가지 끝까지
이르는 데는
몇 천 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전문
[해설]
선시집(仙詩集) 『구름 위의 다락마을』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선계(仙界)를 주유(周遊)하고 있는 화자가 토공(土公)이라는 신선을 만나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이다.
토공이 화자에게 묻는다. 그대가 살고 있는 인간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그래서 화자인 나는 지구라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동(東)은 아침인데 서(西)는 저녁이고/ 남(南)은 여름인데 북(北)은 겨울’이라고 설명한다.
지구라는 둥근 땅덩이는 자전(自轉)을 해서 해가 뜨는 동쪽은 늘 아침이고, 해가 지는 서쪽은 늘 저녁이다. 아침과 저녁, 낮과 밤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한편 지구는 약간 기우뚱하게 공전(公轉)하므로 남과 북이 기온이 다르며 또한 계절의 변화도 서로 같지 않다.
나는 제법 그럴듯하게 지상의 공간과 시간의 구조를 일러준 셈이다.
그랬더니 토공이 웃으면서 그가 살고 있는 세상 얘기를 한다.
‘그의 집 뜰은 몇 평이 안 되지만,/ 하루에 만 리를 달리는 그의 말도 / 뜰 좌편의 자작나무 한 끝에서 / 뜰 우편의 돌배나무 한 가지 끝까지 / 이르는 데는 몇 천 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얘기란 말인가?
토공은 공간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 생명의 끈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서로가 뒤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형제는 부모로부터 갈라졌고, 4촌은 조부모로부터 갈라졌고, 6촌은 증조부모로부터 갈라졌다. 이렇게 수천 촌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의 핏줄은 침팬지나 원숭이에까지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한 자작나무에서 다른 자작나무까지는 별로 멀지 않겠지만, 종이 서로 다른 자작나무와 돌배나무가 헤어졌던 시점은 얼마나 아득한 태고였겠는가? 지금은 비록 이웃에 서 있지만 그들의 시간적 거리는 무량하기만 하다.
토공은 내게 설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공간과 시간에만 머물고 있는 얕은 내 시야를 열어주려는 것이다. 비록 손에 잡히는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는 하찮은 사물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그것들 사이에는 무한한 우주의 공간과 시간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나와 사물만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들은 다 그렇게 얽혀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