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보 / 유공희
심야보(深夜譜) / 유공희
해저(海底)같이 속 깊은 이 한밤중에는
아무리 작은 소리 하나라도
모든 생명의 흉벽(胸壁)에 반향(反響)을 일어
새빨간 상념의 꼬리를 남겼다
한 마리 먼 데 개 짖는 소리에
구름이 무너지는 통곡과도 같이
바위라도 떨리는 홍소(哄笑)와도 같이
끝없는 암흑이 진동할 때
하나 이름도 없는 나뭇가지는
밤새도록 몸서리쳤다
아 떠도는 반딧불 파란 꼬리와도 같이
어둠을 흐르는 한낱 울고 싶은 마음이여!
이때 기이한 하얀 생물들이
쉴 새 없이 나의 창을 쫓았다
쫓고는 전락(顚落)해 가는 날개 있는 조그만 생물들은
나의 흉벽(胸壁)에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
아 단애(斷崖)에서 전락(轉落)하여
깊은 수저(水底)에서 빛나는 무수한 돌이여!
오 나의 창에서는
얼마나 많은 나비가 죽어가느냐!
얼마나 눈부신 낭비(浪費)가 계속하느냐!
노랗게 노랗게 나의 창 까만 유리에
기이한 화문(花紋)이 짜인다
어딘가 깊은 산 묘지와도 같은 나의 고독에서
쉴 새 없이 수면(睡眠)을 쫓아내는 조그만 소리들이여
화족(花族) 같은 낭비(浪費)의 즐거움이여
이 아름다운 낭비의 순간은 무엇이랴
나는 등잔불처럼 놀라며 이 아름다운 비명(碑銘)을 읽으려고…
오 너 천체(天體)같이 살아야 하였을 생명이여
아 속 깊은 바다 그윽한 곳에서는
날과 밤을 거쳐 모서리쳐 우는
하얀 조개알이 있으려니
어느 날 해안에 서서 야릇한 애정을 만끽하던
밤이여!
아무리 작은 빛깔 하나에도
불멸의 원한(願恨)을 거느리고 헤매는 나의 영원의 밤
한없는 그 수심(水深)― 나의 눈물이여, 즐거움이여!
(1941. 9. 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