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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떠나간 자리/임보

운수재 2007. 9. 30. 10:11
 

 

 


떠나간 자리/임보

황량한 가을 들판에 남아있는 빈 그루터기일레
추수의 아픈 낫에 머리가 다 잘린

된서리 허옇게 내려앉은 모과나무 빈 가지일레
지난여름 풍성했던 꿈의 열매들 다 뜯기고 만

요란한 잔치가 끝난 집의 빈 뜨락일레
부엌엔 불이 꺼지고 잿더미만 바람에 흩날리는

가을 숲 속 어느 멧새가 남겨 놓은 빈 둥지일레
마른 나뭇가지에 소소히 바람만 드나드는

제왕을 잃은 빈 궁궐일레
당신이 없는 이 방은

아, 사랑의 파장에는
주정꾼도 없이 이리 적막한가

그러나
여기저기 당신의 체취가 아직 배어있습니다
당신이 만지던 옥합
당신이 마시던 찻잔

남은 그 향기가
나를 연명케 합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24]임보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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