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담(漢詩閑談)

함축 / 조영님

운수재 2007. 10. 22. 07:18

 

含蓄(함축) / 조 영 님

 

시란 외부세계에 대해 興起한 감정을 기탁하는 것이다. 나아가 표현의 미를 획득했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시'라고 이름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된 시가 감동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시인가? 明의 陸時雍은 「詩鏡總論」에서 '시를 짓되 재주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지나치게 재주를 드러내는 것이 병이 되며, 無情한 것이 병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친 것이 병이 될 수 있다. 시는 말이 없는 것이 병이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해버리는 것이 병'이라 하였다. 감정이 넘쳐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모조리 드러내는 것은 시의 맛을 잃게 만든다. 다시 말해 재미없는 시가 될 소지가 높다. 그래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다 하되 의미는 언어의 테두리를 넘어 존재하는 함축의 수법을 귀하게 여겼다.

 

일찍이 歐陽修는 「六一詩話」에서 '그려내기 어려운 경물을 눈앞에 있는 듯이 그려내고 말밖에 끝없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만 지극한 경지'라고 하여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축을 시 창작의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하였다. 白居易 역시 「文苑詩格」에서 '시를 씀에 있어서는 정밀한 탐색을 요구한다. 말은 남아도는데 그 속에 담아내는 지혜는 이미 바닥이 나버리게 되어서는 안되니, 반드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멀리까지 뻗어나가게 해야 한다'라 하여 함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감정을 기탁하되 직설적이기보다는 완곡하게 드러내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기에 함축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역대의 시론가들은 함축에 대하여 '言不盡意', '文外之重旨', '餘味', '言外意', '味外之味' 혹은 '鏡中之象'과 '水中之月'과 같은 표현을 빌어 시구 중에 남아도는 맛과 남아도는 뜻이 있을 때 최상의 작품이라고 보았다.

다음은 함축을 말할 때 곧잘 인용되는 시구이다.

 

a 오랑캐의 말은 북풍에 의지하고 胡馬倚北風

   월나라의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 越鳥巢南枝 <古詩>

b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羈鳥戀舊林

   연못 속의 고기는 옛 못을 생각한다 池魚思故淵 <陶淵明>

c 무정하게도 오히려 돌아올 때도 되었건만 無情尙有歸

   游子는 돌아오지 아니하네 游子不得還 <韋應物>

 

a와 b의 시는 모두 어떠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詩意가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않아 독자는 상상을 통해 작품이 함유하고 있는 깊은 뜻을 곱씹어서 결국 '고향'이라는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즉 胡馬, 羈鳥, 池魚의 시어를 통해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기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c의 경우 시의가 이미 확연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餘味가 없어 더 이상 생각하거나 곱씹어볼 것이 없는 시가 된다. 고려시대 李齊賢은 가장 이상적인 시의 경지를 '言外意'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데 그는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는 시구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조선시대 崔慶昌의 <봉은사 스님의 시축에 쓰다(奉恩寺僧軸)>이란 시를 감상하기로 하겠다.

 

三月廣陵花滿山 춘삼월 광릉에는 꽃이 산에 가득한데

晴江歸路白雲間 비 개인 강, 흰 구름 사이로 돌아왔네

舟中背指奉恩寺 배 안에서 등 돌려 봉은사를 뒤돌아보니

蜀魄數聲僧掩關 두어 마디 소쩍새 소리에 스님은 빗장을 내리네

 

이 시의 妙句는 결구의 '蜀魄數聲僧掩關'이다. 춘삼월 광릉의 화려한 모습과 그곳을 떠나며 등뒤로 보이는 봉은사의 스님이 빗장을 내린다는 표현은 대비와 조화로 절묘하게 미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춘삼월, 꽃, 소쩍새 소리가 주는 아름다운 풍광은 빗장 속에 갇혀 절제되어 있다. 화창한 봄과 봄을 알리는 소쩍새 소리는 스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지 않는다. 사계절의 변화와 단절되어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계절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너머에 있는 절제는 시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안식이면서 평정이면서 청정한 세계임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스님의 청정하고 맑고 고요한 경계 속으로 자신의 내면의식을 일치하려고 한 듯하다.

 

시를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어떤 이는 맛있는 시와 맛없는 시로 나누기도 한다. 성률과 뜻에만 주력하고 餘味가 없는 시가 후자이니 이는 마치 맛없는 음식과 같아 어느 누구도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 속에 詩味가 있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음식의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하의 지극한 맛이니 이 맛을 아는 자는 마치 나비가 꽃의 꿀을 찾아 빨아먹듯 맛있는 시만을 찾아다닐 것이다.                                                                 (우이시 제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