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담(漢詩閑談)

한시의 희작화 / 조영님

운수재 2007. 10. 26. 07:35

 

 

漢詩의 戱作化 조 영 님

 

 

한시는 押韻, 平仄, 對句 등의 형식적 제약을 받는 까다로운 시 형식이기에 기실 특수층만이 독점했던 문학예술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실학사상에 힘입어 문학의 저변이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민중과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로 인해 전통적인 한시의 격식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대부 문인의 허위의식을 타파하려는 파격시가 등장하기도 하였고 肉談風月, 諺文風月 같은 희작시가 나오기도 하였다.

조선 숙종 때의 사람 朴斗世가 지은 <요로원야화기>는 서울과 시골에 사는 두 양반이 요로원 주막에서 만나 풍속과 정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으로 육담풍월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 한 예를 들어보자.

 

내 시골 내기를 보니                 我觀鄕之賭․

가짐을 괴상히 하는도다       愧底形體條․

언문 줄을 알지 못하니         不知諺文辛․

어찌 진서 함이 괴상하리오    何怪眞書沼․

 

서울 양반이 무식하고 행색이 초라한 시골양반을 얕잡아보고 眞書는 모를 테니 육담풍월이나 배워서 지으라고 하며 먼저 한 수를 지었다. 방점 찍은 賭, 條, 辛, 沼의 훈을 생각하며 읽어야 의미가 통한다. 즉, '賭'는 '걸다'의 '내기'로, '條'는 '가지'로, '辛'은 맛이 '쓰다'로, '沼'는 '못'의 뜻이 되는 것이다. 서울양반이 시골양반에게 화답하라고 하자 시골양반은 풍월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서 짐짓 사양하다가 이에 화답한다.

 

내 서울 을 보니                   我觀京之表․

과연 거동이 뙤놈 같도다         果然擧動戎․

대저 인물을 꾸었으나             大抵人物貸․

불과 의관만을 꾸민 것이라     不過衣冠夢․

 

화답시 역시 읽는 요령은 같다. '表'는 '겉'이니 '것'으로, '戎'은 오랑캐의 뜻이니 '뙤놈'으로, '貸'는 '꾸다'로, '夢'은 꿈이니 '꾸미다'로 읽어서 한문 깨나 하는 줄 알았던 서울 것이 의관만 그럴싸하지 형편없다고 비아냥거린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한시의 형식이나 우리말로 새겨야 의미가 통하는 희작시이다. 또 이런 장난기 어린 시도 실려 있다.

 

몹시 추운 한고조                    大寒漢高祖

도연명은 오지를 않고              陶淵明不來

진시황의 아들을 치고자 하나   欲擊始皇子

주머니에 항장군이 없네           囊無項將軍

 

번역해 놓은 그대로 읽는다면 도무지 무엇을 쓴 시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한고조, 도연명, 진시황의 아들, 항장군이 어떻게 연관이 된단 말인가? 그러나 각 인물들의 이름이 이 시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다. 즉 한고조의 이름은 '邦'이고, 도연명의 이름은 '潛'이고, 진시황의 아들(始皇子)의 이름은 '扶蘇'이고, 항장군의 이름은 '羽'이니 이 시는 대단히 추운 방에 잠은 오지 않고 부싯돌을 치고자 하나 주머니에는 깃이 없다는 뜻이 된다. 몹시 추운 방에 잠은 오지 않고 불도 켤 수 없는 상황을 두고 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시라고 할 수 없는 글자맞춤에 불과한 것이나 역사적 인물을 잘 조합하여 뜻을 만든 재치가 엿보인다.

 

이러한 희작시는 김삿갓에 와서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된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시인으로 본명은 金炳淵이고 金笠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권문세족인 안동 김씨의 문벌에서 태어난 그는 과거장에서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김익순을 논죄하는 글을 짓게 된다. 후에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고 죄책감 때문에 평생 전국을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전국을 떠돌며 남긴 그의 시는 몇 백 편에 이르며 연세가 지긋한 시골노인조차도 김삿갓 시 한 두 편쯤은 암송할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의 필력을 알 만하다. 김삿갓이 어떤 사람의 부고장에 '柳柳花花'라고 써 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뜻은 '버들버들 떨다가 꼿꼿이 죽다'의 의미가 된다. 더 나아가 '柳柳井井花花'라고 한 것도 있으니 이것은 '버들버들 떨다가 우물우물하다가 꼿꼿이 죽었다'의 의미가 된다. 장난도 짓궂다 못해 '언어의 폭력'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절에 가니 글을 지을 줄 알아야 밥을 준다기에 '타'자 운에 맞추어 읊은 것이 '사면 기둥 붉었타, 석양 행객 시장타, 이 절 인심 고약타'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어떤 시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을 묵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하자 역시 시를 지을 수 있다면 재워주겠다고 하며 운자로 '覓'자를 내놓고 지으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許多韻字何呼覓                  허다한 운자 중에 하필이면 멱자를 내놓고

彼覓猶難況此覓                  멱이란 운자 어렵기도 하거늘 하필이면 이 운자란 말인고

一夜宿寢懸於覓                  하룻밤 쉬어가는 것이 멱자에 달렸으니

山村訓長但知覓                  촌구석의 훈장 단지 멱자만 아는구나.

 

'覓'자는 흔히 쓰이는 글자가 아닌데 하필이면 멱자를 내놓는 얄궂은 훈장을 비꼬아 멱자밖에 모른다고 비웃는 글이다. 또 이런 시도 있다.

 

서당은 일찍 알았나니                   書堂乃早知

방안의 모든 것이 존귀하도다        房中皆尊物

생도는 모두 열살도 안되어           生徒諸未十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르네       先生來不謁

 

시골서당의 훈장을 기롱한 시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한시이나 한문의 뜻이 아닌 음을 가지고 우리말이 되게 육담풍월의 수법을 변형시킨 것이다. 각 구의 下三字는 입에 담기 거북한 상욕을 거침없이 내뱉은 것이니 세상을 향한 그의 야유를 짐작할 만하다. <김삿갓시집>에는 이렇듯 짙은 육담이 섞인 시가 상당수 있으나 이것이 김삿갓 시의 전모는 아니다.

 

네 다리 소반에 죽이 한 그릇              四脚松盤粥一器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떠도네     天光雲影共徘徊

주인은 면목없다 말하지 마오             主人莫道無顔色

내사 얼비쳐오는 청산 좋기만 하이     吾愛靑山倒水來

 

방랑하던 중에 어느 가난한 집에서 죽 한 그릇을 대접받고 쓴 시이다. 죽이라고는 하나 어찌나 묽은지 하늘빛이 비칠 지경이다. 그러나 시인은 무색해하는 주인장을 위로하려고 오히려 묽은 죽에 비친 푸른 산이 좋기만 하다고 한다. 시적 재치가 엿보이기도 하거니와 가난한 서민의 삶을 통해 잔잔한 서글픔을 전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전통적 한시의 격식을 고집하는 이들은 '김삿갓의 글자놀이, 곧 파자로의 해학과 풍자는 시도 아니고 작품도 아니다. 다만 재주로 엮은 글자모둠일 따름이다.'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무질서한 세계, 파편화된 세계의 일면을 보여주려는 해체시의 한 양상'으로 보기도 한다. 김삿갓에 대한 평가는 용이하지 않다. 이것은 문학과 비문학을 어떻게 구분하는가하는 문제와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한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었지만 한시라는 장르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이시 제1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