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명의 밧줄 / 정숙

운수재 2007. 11. 8. 06:51

 

 

생명의 밧줄

정 숙(시인)

 

우선 시력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시에 대해 아는 체한다는 것이 몹시 건방진 듯하여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 동안 현장에서 시를 가르치다 보니 나름대로 잣대를 세워두어야 하겠기에 감히 정리 해볼 용기를 가져본다.

시는 내게 생명의 밧줄이다. 옛 설화 가운데 해와 달에 나오는 썩지 않은 그 밧줄인 셈이다.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갇힌 나를 건져 올려준 두레박이기도 하다. 시를 쓰는 유형엔 살다보니 허무하고 뭔가 그립고 고독하다 내숭을 떨며 사치로 쓰는 이들이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삶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이 미물임을 통감하고 진정 허기져서 쓰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들의 빛으로 위안으로 무작정 쓰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필자의 경우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끔 오싹해질 때가 있다.

 

- 우물 속 자신의 모습 바라보다가

 

이처럼 시는 자유, 평등, 자아실현 또는 가난, 좌절, 운명 등을 이기기 위해 또는 나를 반성하고 참회하기 위해 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단지 시대 흐름에 따라 그 표현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 좋은 시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거의 같으리라고 본다. 즉, 모든 사물을 사유의 깊이와 애정으로 바라보며 서정성과 깨우침으로 사상성의 조화를 이루며 민족어의 승화를 지향하여 숨은 詩語를 찾아내거나 造語로 삶의 모순과 이율배반으로부터 진실을 찾아낸 시라고. 어쨌거나 시는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을 주든지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 무당처럼 죽은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 다르듯 현대시는 그 표현방법이 조금 다를 뿐인데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시 공부를 하려는 대다수가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좋아하거나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거나 이해하기 힘들다 하는 것은 直情 즉, 정서의 직접적 표출이 아닌 비유로 다른 사물로 변용 또는 치환하여 그 글을 자꾸 곱씹어 감춘 뜻을 찾아내야 하는 內包언어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리듬보다 묘사를 중요시하고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의인화를 해서 더 신선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관찰력과 문장력도 있어야겠지만 사물을 그냥 사물로 보지 않고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찾아내는 視眼. 즉, 직관력도 있어야 하니 사실 시 쓰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다. 이것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육감을 열어 잠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뾰루퉁 보따리 싸는 애첩의 기질이 있으니 말할 것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시인은 무당처럼 죽은 모든 것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의 두 번째 시집 「위기의 꽃」에 실린 졸시로 성당 어느 결혼예식에서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깨달은 것이다.

 

<참사랑>

 

예수의 거웃 가리려고

바둥바둥

십자가를 진

작은

천 조각,

 

聖衣!

 

물론 예수가 참사랑이겠지만 그 예수의 치부를 가리고 있는 천 조각 자신이 진정 참사랑이란 걸 보여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에 무릎을 탁 치며 쓴 글이다. 그런데 이런 시는 애정을 가지고 자꾸 읽어주어야 그 깊은 뜻이 나타나니 그런 독자가 몇 없어 힘없는 무명 시인은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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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으로

 

살다보면 황당한 일도 많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당장 말로 표현하는 이들은 그래도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우리 선조들은 탈춤으로 창으로 해학적인 풍자로 표현하는 지혜를 가졌으니 필자의 첫시집 『신처용가』는 처용설화를 패러디하여 경상도 남정네들의 속성을 흉보고 어루고 달랜 졸시들이다. 그 중 한편을 예로 들어보면,

 

<休火山이라예>

― 처용아내․2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 서답 : 월경 / 시상에 : 세상에 / 카는 : 하는 / 카믄 : 하면

 

솔직히 미친 듯이 연작으로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속이 후련했던지 특히 돌아가실 때까지 편운 선생님께서 많은 격려를 해주시고 박수를 쳐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

중충 묘사와 치열성으로

 

요즘 묘사를 중심으로 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들도 많이 있지만 뒷끝이 뭔가 섭섭해서 중층 묘사와 치열성으로 묘사를 겸한 철학적 깨달음이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발표된 시 ‘밤을 태우는 힘에 대하여‘ 란 졸시 中 지면상 마지막 부분이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 순대 속처럼

끈끈한 피로 엉켜 시린 추위를 달래주고 있었다

하찮은 조개 몇 개와 막창들이 그리고 떡볶이까지

아무 힘없어 보이는 것들끼리 어울려

어둠을 몰아내려 불 지피며

세상을 움켜쥐고 끌어당기거나 끌어안는

힘, 그 힘이 부러워

나는 밤의 깊이도 잊은 채 앉아 있었다

 

특히, 현대시가 언어의 폭력이란 말도 많이 쓰고 있는데 물론 그런 부분을 공감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듯이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남이 쓰지 않는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기 위한 조금 억지스런 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할 줄 알아야

 

여기서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상력이다. 그 시의 성공 여부를 등급으로 메기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수준을 보아야 한다. 단순히 체험을 회상하는 재생상상력의 작품인가 아니면 연상 상상력에서 비유로 이미지화를 잘 했느냐 마지막엔 그 누구도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창조적인 상상력이냐에 따라 작품의 등급이 나누어진다. 거기다 갓 낚아 올린 붕어처럼 펄펄 살아 숨쉬는 신선한 맛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감각적이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신춘문예 시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을 대했을 땐 살이 떨리고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나야 적어도 그런 시 가까이 가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죽을 때까지 그런 시 한편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감추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창의력을 위해

 

아무리 떠들어봤자 선배님들이 다 하신 말씀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층에 현대시를 가르치면서 특히 초등학교부터 현대시를 가르치면 문장력이나 치밀한 사고력 뿐 아니라 관찰력과 직관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지니 장래 창의력 있는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예를 들자면 해바라기 꽃에서 엄마의 얼굴을, 또는 꽃핀 개나리를 보고 개나리가 봄을 밀어 올린다고 볼 수 있도록]

 

­아줌마는 시 쓰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여성이란 입장이 참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아 걱정이다. 어느 문학 강연 에서 아줌마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젊은 남자 시인이 대뜸 ‘아줌마는 시 쓰면 안돼요. 성상납을 해야 돼요.’ 그 말에 납득이 가지 않아 하는 필자에게 남자 시인들은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 무슨 딴 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에 새삼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겠지만 몇 사람 때문에 맛은커녕 구경도 못해본 많은 여성 시인들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다른 여성 시인에게도 해명을 좀 하라고 해도 묵묵 부답이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듯 하다. 여성들이 같이 손잡고 남성들의 시기심 같은 그런 사고와 시선을 근절시킬 수는 없을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며 빈정거리는 그들을 위해 서로 손잡고 해결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이시 제1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