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한하운의 <전라도 길> / 김석환

운수재 2007. 11. 8. 07:35

 

 

한하운의「全羅道길」/  김 석 환

 

 

이웃들로부터 가끔 어느 시인을 가장 존경하느냐, 또는 가장 애송하는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느 특정한 시인이나 시를 꼬집어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시가 주는 감동이 때마다 바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때로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발표하는 시를 듣다가 무릎을 치기도 하고 까맣게 잊었던 어느 시의 한 구절이 떠올라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시란 많은 여백을 숨기고 있는 열린 텍스트로서 독자의 가슴에서 완성된다니 진지한 독서 자세를 요구하는 것 같다.

아무튼 가족들의 생일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 흐린 기억력에도 요즘 한하운 시인의 시 「全羅道길」은 가끔씩 의식의 밑바닥에 잠겨 있다 떠오른다. 요즈음 知天命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공연한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내가 감상적이기 때문일까. ‘小蔍島 가는 길’이란 부제가 붙은 이 시는 全羅道길이요, 황토길을 절뚝이며 가고 있는 문둥이 시인의 선명한 모습을 그려 준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어느 때 어느 책에서 이 시를 처음 보았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굳이 추측해 보면 시인의 꿈을 불태우던 고등학교 재학 시절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교통이 나쁘던 시절 먼 길을 걸어 소록도로 향해 가는 어느 문둥이의 아픈 체험을 토로하는 기행문처럼만 여겼다.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천리 황토길을 걸어가는 문둥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였다. 버드나무 아래서 신발을 벗고 발가락이 문드러져 없어진 것을 확인하는 문둥이를 생각하면 섬찟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그 문둥이들의 흉물스럽기까지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소록도 교회에서 지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맏형댁인 우리집으로 귀향한 삼촌은 문둥이들을 유달리 친절하게 대접한 것 같다. 어려웠던 그 시절 마을에 문둥이들이 동냥을 오면 무슨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양 집으로 불러들여 어머니께 밥상을 차려내라 하였다. 삼촌은 성경을 읽어 주고, 기도하고, 한 상에서 밥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고, 보리쌀이라도 후하게 담아 주었으니 소록도 생활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어린 손을 이끌고 교회를 가던 삼촌의 손이 혹시 문둥이의 손과 닿지 않나 조바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가마솥에 넣고 사용한 그릇들을 삼는 어머니께 삼촌은 문둥병은 절대 전염이 되지 않으며, 그네들을 박대하면 벌받는다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이 시를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내 어린 시절 집안에서 벌어지던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 시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다간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의미와 자세를 가장 쉬운 말로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길이란 ‘全羅道길’의 자의대로 온전한(全) 비단길(羅道)처럼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그곳엔 늘 숨막히는 더위처럼 고난이 이어지는 멀고 먼 황토길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와 반대로 황토길처럼 황량하게 보일지라도 비단을 펼친 듯 아름다우며 쉬어 갈 버드나무 그늘도 있는 아이러니컬한 길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비록 문둥이끼리 만나서라도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해가 서산에 지더라도 소록도, 그 천리 먼 곳에 낙원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걷는 길이 인생길임을 넌지시 일러 준다.

 

한하운 시인은 자신의 아픈 체험을 바탕으로 준엄하게, 아니 태연히 인생길을 가다가 가끔은 신발을 벗어 보기를,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문둥병이란 통증을 모르는 병이라 자신의 발가락, 그 생명의 한 부분이 조금씩 죽어 가도 스스로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욕망과 이기심이란 무서운 문둥병에 감염되었으나 스스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 환자인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어린 날 삼촌과 밥을 먹던 문둥병자를 조마조마 지켜보던 것처럼 남의 얼굴을 내 이그러진 눈으로 쳐다보고 못났다고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얼굴은 아니, 내면은 죄와 허물로 이그러지고 내 생명이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는 것은 모르고……

 

가을이 되니 도봉산 위의 하늘은 한결 푸르른 빛으로 창문을 물들인다. 여름내 닦지 않은 베란다 창문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스피드 시대요 무한 경쟁의 시대를 실감할 정도로 주변은 바뀌고 덩달아 나도 변하고 있다. 남들이 달려가니 영문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하다. 시골 초등학교의 풋내기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학교 앞 냇가에서 피라미 쫓으며 올려다보던 하늘 빛, 그 푸름을 머금고 흐르던 가을 냇물 소리가 들린다. 그 물보다 더 맑은 눈빛으로 서울로 떠나는 나를 마중하던 녀석들의 눈물을 버렸다. 서울로 올라와 열서너 번이나 주소를 옮기며 사느라고 따뜻했던 이웃들의 인정을 잊은 지 오래다. 부모님들은 선산에 잠드시고 형제들은 멀리에서 살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사이에, 그 상실의 아픔을 모르고 그저 입신과 안일을 좇아 달려오다 보니 벌써 지천명이 목전에 다가왔다.

 

갑자기 발가락이, 아니 온 몸이 저리고 아프다. 요즈음 공연히 분주하게 지내느라 찾지 못하던 도봉산 산길엔 하나 둘씩 낙엽이 질 것 같다. 그 떨어져 쌓이는 낙엽을 밟고 싶다. 가다가 잠시 로뎀나무 그늘인 양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헤아려 보고 도봉산 계곡물에 아린 발을 담그고 싶다. 그리고 그 맑은 물속에 일그러진 내 얼굴을 만나 무사하냐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언젠가 한하운 시인의 건강한 영혼을 만나러, 어릴 적 삼촌이 들려주던 소록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러 소록도에 다녀오고 싶다.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

                                                                                                                   (우이시 제1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