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서시> / 김신아
윤동주의「서시」/ 김 신 아
부끄럼 없는 삶
― 윤동주 님의 「서시」를 가슴에 품고서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님의 서시는 그의 생애를 모르더라도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의 길을 정하는데 더 할 나위 없이 반듯하고 순수한 지표(指標)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처음 이 서시를 읽었다. 그 날 밤 나는 단숨에 이 시를 외우고는 마음속 깊이 각오를 새롭게 한 기억이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삶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 삶이겠는가' 어린 마음이었지만 나에게 윤동주님은 마치 오랜 벗과도 같이 느껴졌고, 어느덧 연인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가와서는 지금까지도 그리운 이가 되고 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평소 독서를 즐기는 문학적인 어머니와 시인이셨던 외삼촌과 그분을 아끼던 집안 분위기에서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여러 차례 수상의 영광을 맛본 것이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중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수업시간이다. 장래의 자기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커서 어른이 되면 시인이 되거나 대학교수가 되겠다고 했다. 아마도 자유인으로서 시인과 존경받는 학자로서, 후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멋지게 생각되었던가 보다. 간간이 글짓기에서 상을 타기도 하고 학급신문을 맡아 편집하곤 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시인이 되겠다는 것이 그다지 별난 꿈이 아니었던지 선생님도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다음에 꼭 멋진 시인이 되려므나" 하시는 선생님의 격려와 미소를 뒤로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간호사나 선생님, 현모양처가 장래 희망이기 일수였는데 어린 나의 꿈이 시인이라니, 그 날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웃으시며 나를 쳐다보시곤 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론 예비 시인이란 별명까지 얻어 여러 가지 특별활동에 불려 가곤 하였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는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인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조숙한 탓이었던지 나는 시인들의 생애와 좋은 시들을 노트에 베끼거나 암송하면서 아이들과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문학 서적들을 읽으며 가끔 뜻이 통하는 선생님들과 설전을 펴기도 하는 등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 괴짜가 되어갔다.
그럴 무렵에 다행히도 윤동주님의 서시가 나에게는 하나의 삶의 지표가 되었던 것이다. 어설픈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 글을 쓰면서 습작을 하는 동안 시인으로 살리라는 꿈을 더욱 밝혀준 것은 다름 아닌 서시의 시구들이었다.
나는 서시에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고 싶었고 또한 죽어 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큰 마음을 갖기로 하였다. 무릇 시인이 되려면 바르고 거룩하며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참되고 진실한 사람, 청빈하고 깨끗한 사람, 욕심 없고 너그러운 사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불의에 절대 굴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1990년 첫 시집 『이별연습』을 출간하고 문단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 역시 시집의 서문에다 윤동주님의 서시를 무슨 보물처럼 간직해온 사연을 밝힌 바 있다.
이렇듯 한 편의 시가 나의 인생에서 하나의 길을 정해준 셈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작고 외로운 존재들이다. 거대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의 한 모퉁이에서 서성이다 사라지는 티끌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 나는 지금도 글을 쓰다가 문득 서시를 외우고는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였던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첫 시집을 낸 지도 벌써 십이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서시와 같은 좋은 시를 남기고 싶다. 시를 통해 후세인의 마음에 감동을 심고 싶다. 어둡고 외로운 삶에 위안이 되는 시를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진정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는가를 늘 생각한다.
요즘 같은 황금만능의 시대―너도나도 모이기만 하면 돈 번 이야기 돈 잃은 이야기가 화재의 전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순수문학을,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란 한편으로는 보잘것없고 어리석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코 이들이야말로 제 목숨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촛불이요, 세상을 바르게 인도하고 맑게 정화하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시를 쓰면서 사는 일이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 행복은 누구로부터 보상받아서 행복한 행복이 아니다. 내가 맛보는 즐거움은 영원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을 추구하기에 차 오르는 내면의 만족감이요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긍지이며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자유스러움이다.
시는 때로 나 자신의 슬픔을 치유하는 치료약이 되기도 하고 정신적인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윤동주님을 친구 삼았듯이 이 어려운 시를 쓰며 그마저도 친구인 양 사귀고 있는 모양이다.
너무나 유명하여 모르는 이가 없는 시, 그 윤동주님의 서시를 다시금 외어보는 이 겨울 밤, 내 마음은 따뜻하다. 그리고 여전히 즐겁다.
오늘밤에도 저 창밖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고 있으리라.
(우이시 제1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