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독은 달콤하다 / 정숙

운수재 2007. 12. 17. 06:19

 

 

중독은 달콤하다     /  정 숙(시인)

 

 

1. 기둥서방을 위해

 

이미 태어난 내 시들이 참 대견하다. 조용한 시간 곰곰 읽어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매일 쓰지 않으면 괴롭기도 한 이것이 아무도 즐겨 읽어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일상이 되어 읽고 쓰고 쓸데없이 남의 글 간섭까지 하면서 한 단어를 넣어야 하나 빼버려야 하나 오물딱 조물딱 만지작거리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이처럼 정신 쏟아 부을 애인이 있다는 것이 또 행복 아니겠는가. 이제 숨기지도 않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기둥서방이라고 할까? 종일 같이 뒹굴어도 질리지 않는, 물고 늘어지면 질수록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길 떠나야 한다.

 

2. 흰 소의 울음을 찾아

 

그러나 그는 까다롭다.

아무 격식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또 어느 양반 댁 자손이라며 체험의 객관화 실감유리 묘사 상상력 등등 법도는 얼마나 찾는지 때론 미워서 버릴 작정도 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며 울며 매달리기도 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기도 한다.

아예 관심을 더 쏟아 붓기로 작정하여 가슴에 더욱 뜨겁게 품어 그의 밑바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면 뿌리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호~불어주며 다독인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보이면서 그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령 징 전시회를 하고 난 뒤 징을 가만히 두드려 보니 소리를 내는 징도 징을 두드리는 징채도 바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과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있는 징 울음소리 같은 시 한편 쓰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 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졸시 <흰 소의 울음을 찾아 -바람 불다 ․ 65> 전문

 

결국 시, 그는 깨달음의 길 찾기 아니겠는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득도를 위한 마음 다스림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진실하게 살갑게 드러내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인데 묘사에만 빠져 허우적대다가 물만 실컷 먹고 쓰러지는 짧은 사유가 안타깝기도 하다.

앉아서 누워서 찔러보다가 입맞춤하다가 욕도 하면서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끈적끈적 질기게 씹히는 건더기를 찾아 날마다 그의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꼬집는 말도 비꼬는 소리도 바람의 회초리에 몸을 맡긴다.

가슴 찢어지도록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다.

또한 나의 말도 웃음도 눈길도 상대방 가슴에 부딪는 징채가 될 것이므로 시, 짝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징채가 되어 맑은 시안을 갖도록 아프게 두드린다. 그들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심금 울리며 은은히 퍼져나갈 날 기다리며.

 

3. 다듬이질

 

그런 사유가 또 늘어지거나 곰팡이에 먹힐 수 있어 걱정이다.

요즘 수필 같은 긴장미 떨어진 작품이 유행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독자를 위해 코르셋을 풀어버릴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다듬이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명은 긴장미라면서 밤새 당기고 밟고 물을 뿜어 꼽꼽할 때 잠들지 못하도록 다시 두드린다.

한 낮 하얗게 표백이 되어 빨랫줄에서 주름살 하나 없이 헛기침이라도 하며 펄럭일 그를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마다않고 다듬고 또 다시 다듬는다.

다 되었다고 넣어둔 것들 시집으로 묶을 때 제목도 다시 바꿔보고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로운 시어 찾기에도 골몰하며 한 번 더 다독이며 다듬는다.

그래도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가슴이 아파 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시, 그는 영원한 나의 고통의 바다이자 안식처이므로, 성냥 한 개비에 지나지 않는 날 뜨겁게 불 붙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므로, 그 성냥 한 개비가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훨훨 타올라 허전한 누군가의 가슴 불붙일 수 있는 날 기다린다.

결국 나의 더 잘난 기둥서방 그를 위해 날마다 지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우리시 제2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