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사자 사냥 / 임보
운수재
2007. 12. 31. 09:04
사자 사냥/ 임보
백수(百獸)의 왕 사자를 괴롭히는 것은
그보다 몸집이 큰
곰이나 코끼리 같은 놈들이 아니라
눈꼽만큼도 못한 몇 마리의 쇠파리다
떨쳐도 떨쳐도
끈질기게 달라붙은 저 망령의 거머리 같은
그놈들에게
사자는 그만 앞발을 들고 멍청히
온몸을 내맡기고 만다
쇠파리들은 사자의 콧등에 올라
혹은 매서운 눈자위를 의기양양 돌면서
사자의 진액을 빨아먹는다.
그러나 쇠파리들도 사자를 괴롭힐 뿐
그 무서운 몸뚱이를 잡아족치지는 못한다
누가 저 무서운 사자를 눕히는가
그놈보다 무서운 놈이 어떤 놈인가
저 굳은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이기는 자 누구인가
놀라지 마시라, 그놈은
사자의 몸뚱이보다 몇 천만 배나 작은
쇠파리보다도 몇 만 배나 작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몇 마리의 균이다
그가 사냥터에서 얻은 하찮은 상처 틈으로
침입한 몇 마리의 균이 드디어는
저 견고한 생명의 성(城)을 무너뜨린다
보라 벌판에 쓰러져 있는 죽은 사자의 시체를
애초에 그를 넘어뜨린 것은
사나운 독수리 무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몇 마리의 균이다.
사람들아
낯도 못 들고 죽어 사는 사람들아
고개를 들라
그대들도 힘이 있거니
그대들도 힘이 있거니
어서 사냥길에 오르자
저 무법의 사자 목에 방울을 매달고
저 횡포의 승냥이 발목에 족쇠를 채우자
그대들을 마지막 거두어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일 뿐
이 지상의 어떠한 것도
그대들의 적수는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