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대동시 4
복대동시(福臺洞詩)·4 / 임보
복대동 1733번지
날라리벌집 같은 다세대 주택 아래층엔
다섯 가구가 세들어 사는데
1호방엔 낚시 바늘처럼 등이 굽은 80 노파가
종일 화투패로 신수나 떠보며 혼자 살고 있는데
2호방엔 아가씨가 사는 모양인데
이사온 지 몇 개월에 아직 얼굴도 모르는 것은
우리들의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3호방엔 젊은 남녀가 살고 있는데
남자는 새벽 일찍 트럭을 몰고 나가고
여자도 이른 아침부터 공장으로 떠나서
이들도 아직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4호방은 그랜저 세단이 하나 사는데
차만 문밖에서 늘 지키고 있고
사람들은 통 볼 수가 없는데
빨랫줄에 빨간 빨래들이 펄럭인 걸 보면
젊은 여자도 아마 함께 끼여 사는가 본데
5호방엔 50 넘은 사내가 혼자 살고 있는데
홀애비 같기도 하고 유부남 같기도 한
목석같이 멋없는 놈이 자주 방도 비우고 지내는데
무엇하는 놈인지 통 할 수가 없다고
옆집의 여반장은 날 놓고 수군대는 모양인데
내가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오직 1호방 노파
청소차가 올 때마다 내 방 쓰레기 날라다 주고
된장국 끓이면 놋대접에 퍼 오기도 하는데
그 노파에게 가끔 애기 손님이 찾아오는데
아파트에 사는 손자라고 하는데
2호방에도 더러 손님이 오는 모양인데
자정이 넘어 찾아온 손님들인데
다음날 아침이면 문간 밖에
빈 술병들이 그리도 많이 쌓인 걸 보면
고 여자도 아마 꽤 술꾼인가 본데
3호방엔 자주 단체 손님들이 밀려와
왁자지껄 고스톱을 치는데
밤을 새우며 법석을 떠는 바람에
잠들을 설치기도 하는데
4호방엔 손님도 없는데
1호방 노파가 쑥덕인 걸 보면
우렁각시가 사는 것도 같고
배뱅이 삼촌이 사는 것도 같은데
위층의 집주인은 아직 이사올 기미도 없는데
셋방살이 객들만 모여 서로 눈치보며 살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