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8. 11. 24. 06:00

 

 

강(江)의 설화(說話)/        임보

―휴전선―

 

 

어느날

평화로운 한 마을을 놓고

붉은 마귀와 검은 마귀가 싸우다 못해

지팡이로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하여

평화의 마을은 하루 아침에

붉은 마을과 검은 마을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한 두렁의 논밭이

한 우리 속의 가축들이

한 가정의 식구들이

둘로 갈라서는 수도 많았습니다

마귀가 그은 지팡이 금은

불의 강물이 되어

마을과 마을을 깊이 갈라 놓았습니다

강물은 모닥불처럼 피어올랐고

그를 건너려던 수많은 사람들은

부나비처럼 죽어갔습니다

신혼 사흘만에 잃은 신부를 찾아

달려가던 신랑도

팔십노모(八十老母)를 못 잊어

몰래 넘으려던 효성스런 외아들도

아우를 찾던 형도

언니를 찾던 소녀도

불의 강은 모조리 다 삼키고 말았습니다

양쪽 마을 사람들은

강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악을 쓰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검은 마을 사람들은

붉은 마을 사람들 짓이라고 하고

붉은 마을 사람들은

검은 마을 사람들 짓이라고 우겨댔습니다

강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따스한 마음들이

증오로 가득찬 싸늘한 마음들로 바뀌고

순박했던 자리가 교활로 차고

음모가 정직을 추방했습니다

머리에는 들소처럼 뿔이 돋고

칼쿠리같은 손톱 발톱이

손발의 끝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하여

두 마을 사람들은

붉은 마귀와 검은 마귀 떼들이 되어

서로 욕설을 퍼붓고

돌멩이를 던지고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엾은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큰 마귀 두 놈이 들어앉아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