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8. 12. 6. 08:48

 

 

 

짐/                   임보

 

 

 

청명한 아침

휘파람 불며

그대를 두 팔에 안고 처음 산을 올랐을 때

그대는 몇 캐럿쯤의 눈부신 보석이거나

짙은 향기의 꽃다발이었다

해가 중천에 솟고

떡갈나무 잎새들도 더위에 지쳐

늘어지기 시작할 무렵

산중턱에서 그대는 어느덧

나의 젖은 등에 업혀 있었고

정오 산마루에 올랐을 땐

그대는 이미 한덩이 납처럼

빛깔도 냄새도 없었다

아, 그리고 힘이 다 빠진 오후

자작나무 가지 위에 그대를 묶어 끌며

산을 내려오게 되었을 때

그대는 드디어 다 뭉개진

한 뭉치 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