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2008. 12. 26. 06:35

 

 

양구시편(楊口詩篇)․1 /                임보

 

 

큰 놈이 머리를 깎고 양구 훈련소로 떠나던 날

제 누이는 눈이 벌겋게 붓고

제 에미는 몸져 눕고 말았다

전쟁 때도 아닌데 뭐 그러느냐고

말로는 그렇게 달래면서도

애비도 상추밭에 들어가 애문 상추 뜯으며

하늘만 연상 보고 있었다

 

60년 전에는 할애비가 짊어지고

압록강을 넘나들던 서러운 땅

30년 전에는 이 애비가 논산에서부터

38선까지 지금껏 지고 온 동강난 땅

오늘은 아들놈 여린 어깨에 넘겨 메주고 돌아서는

이 무겁고 한서린 땅

 

수천만 에이커의 대륙을 가진 서양 젊은이들을

방학이면 국경도 없이

스위스로 아테네로 알프스로 캠핑을 떠나는데

겨우 몇 평 땅 짊어진 조선의 아들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뜨거운 불볕 밑에서 총칼에 날을 세우고

핏줄끼리 으르렁대고 있는가?

 

무엇이 이 땅에 담을 쌓고

무엇이 이 땅에 불을 붙이는가?

누가 어린 아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로 몰았다던가?

몇 천년을 두고 두고

일만 어버이들은 아들의 고삐를 끊었거늘

누가 한 애비의 잔인한 얘기를

역사에 그렇게 기록해 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