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때가 오면
운수재
2009. 1. 11. 07:18
때가 오면 / 임보
춥고도 긴 겨울이 끝나던 어느 아침
양지발에서 조을고 있는 멧새의 등을
다독이며 눈을 뜨라고
따스한 햇살이 소곤거렸다
퍼득 눈을 뜬 멧새가
개나리에게 달려가
가지 끝의 여린 순들을 흔들며
어서 일어나라고
봄이 왔다고
종알거렸다
그러자 개나리 가지들은
소매 속에 감추었던
그 앙징스럽게 예쁜 작은 종들을
꺼내 흔들면서
노랗게 노랗게 짖어댔다
이 소문이 삽시에
온 들판과 산들에 퍼져나가자
진달래 벚 목련들이
다투어 굳은 눈들을 찢고
그들의 부신 횃불을 터뜨리는가 하면
아, 땅속의 옥잠화 작약 냉이 등속들도
일제히 혁명군대들처럼
칼과 창과 곡괭이 시늉을 하며
그들의 주먹을 지상에 밀어올렸다
산골짝의 잔설들이
볼을 에이던 찬바람이
줄행랑을 치고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때가 오면
여린 초목들도 하루아침에
세상을 그렇게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