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은수달 사냥
은수달 사냥
운수재
2009. 3. 19. 08:42
은수달 사냥/ 임보
경상남도 통영군 한산 앞바다 비진도(此珍島)라는 외로운 섬에 갔더니, 기미년(己未年)에 태어나 일흔 해 동안 섬을 지킨다는 김근찬(金今瓚)옹이 수달을 잡고 있었다. 바닷가 먹바위 곁에 홀로 앉아 동백나무 몽둥이 하나 들고 수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제왕의 수염을 잡고 흔들 만한 어느 희빈의 밑자리에나 깔림직한 귀하디귀한 백호 은수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달이 문어 고기를 좋아해서 문어를 잡는 날이면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문어를 즐기는데, 잘못하면 그 문어발이 수달의 눈동자를 파고 들어 눈을 멀게도 하므로 수달이 문어를 씹을 때는 항상 눈을 감는다고 했다. 그러니 문어를 먹는 수달을 만나기만 하면 동백나무 장대 하나로도 놈을 너끈히 잡을 수가 있다고 장담을 했다.
김(金)옹의 움집에서 하루 저녁 얻어 자며 무학 막소주 둬 홉쯤 고소한 청태에 싸서 서로 나우었을 때 그는 그렇게 수달 잡는 얘기를 해 줬다. 그동안 몇 마리나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한참 있다 빙긋이 웃으면서 그도 그의 조부에게선가 증조부에게선가 그런 얘기를 듣고 기다리다 어느덧 한평생 보냈노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