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은수달 사냥

매화를 등에 지고

운수재 2009. 3. 29. 11:42

 

 

 

梅花를 등에 지고/                         임보

 

 

 

충청도 강청(江淸) 산골

옥매원(玉梅園)이란 매화밭에 가서

조선종 단엽설백매(單葉雪白梅)를

서울 시인 몇이 만지다가

마음이 가려워 와서

몇 마리씩 다투어 낚아 왔다.

 

나도

주인 곽(郭)씨가 마당 한귀퉁이 흙 속에

깊이 묻어 감춰 둔 못생긴 한 늙은 놈 골라

등에 지고 돌아오는데

주인이 그렇게 애석해 하는 꼴을 보면

묵을수록 귀한 것도 세상엔 더러 있기는 있는 모양,

우리의 육신도 나이 들어 홈이 패고

검버섯이 돋아 매화등걸처럼 될 때

누가 우리들 볼 비비며

곁에 두고 저렇게 반겨 주겠는가?

 

하기사 모를 일일세

우리도 저놈들처럼 묵은 등걸에

청아한 꽃잎 몇 송이 매달고 가다 보면

이 세상 눈먼 자들은 몰라도

혹 天上의 어느 매화밭 주인이

눈독들여 두었다가

볕 환한 자리에 옮겨 심을는지……

 

옥매원에서 조선종 단엽설백매(單葉雪白梅)

그 묵은 놈 하나 골라

등에 지고 돌아오는데

공교롭게도 매화꽃잎 같은 눈발이 북천(北天) 가득 몰려와

온 세상을 가득 덮은 것은 무슨 연고인고?

옳거니, 그것이 그러한 천상(天上)의 소식을

이렇게 땅이 꺼지도록 알리는구나.

나는 등에 진 매화 궁둥이를 몇 번 두들기며

길을 재촉해 천상의 꽃잎을 밟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