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아직도
운수재
2009. 4. 18. 08:20
아직도
임 보
남은 몇 개의 이에 의치를 걸기는 했지만
아직도 매실주에 잘 삭인 매운 홍어를 맛볼 수 있게 하시고,
돋보기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도 맑은 왕유와 제백석을 즐길 수 있게 하시고,
보청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직도 지나간 명창들의 남도소리며 대금산조에 귀를 열어 주시고
매일 혈압강하제를 한 알씩 복용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가까운 삼각산 산자락에 오를 수 있게 하시고
잉어의 등처럼 싱그러운 젊은 여성들의 곧은 다리를 보면
아직도 설레는 가슴을 멈추지 않게 하시고
잘못 돌아가는 세상의 얘기를 들을 때면
아직도 여윈 주먹이지만 불끈 쥐게 하시고
너무 큰 재주 주시지 않아 아직 교만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너무 많은 돈 주시지 않아 아직 방탕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내 가족과 이웃들
아직도 날 사랑하게 하시니…
하느님,
고맙습니다.
(죽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