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눈부신 귀향> 책머리에

운수재 2009. 8. 12. 17:26

 

 

 

책머리에

 

 

흔히 시는 관념을 지양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관념의 사물화를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래서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나는 시를 '영롱한 언어의 사리(舍利)'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영롱히 빛나는 것은 사물만이 아니다.

관념도 농축되면 백자처럼 빛난다.

언어 자체가 관념의 그릇이므로 이를 배제하려 하기보다는 맑게 수용하는 일이 시의 몫일 것도 같다.

 

당신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풍경 대신 맑은 생각의 씨를 심고 싶다.

그 씨가 한 그루 수목으로 자라 그늘을 드리우게 되면 그대의 영혼이 안식을 누릴 수 있으리라.

이 작은 시편들이 부디 당신의 외로운 나그네 길에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기를…….

 

                                                                          2009. 여름, 운수재에서

                                                                                                                  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