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그러다가

운수재 2009. 9. 10. 20:11

 

 

 

 

그러다가/                    임 보

 

 

 

저녁에 매실주 한잔 하며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병든 솔개 새끼를 구원하는 한 생물학자의 선량한 얘기를 보다가

죽어가는 한 생명을 정성으로 보살펴 살려내는 뿌듯한 장면을 지켜보다가

아, 나는 얼마나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가 자책하기도 하다가

 

문득

한 개의 의문이

삭막한 내 뇌리를 유성처럼 스쳐갔다

 

생물학자가

솔개의 먹이로 던져준 생생한 들쥐가

내 머릿속으로 달려들어 후벼 팠다

 

이놈아, 길짐승 날짐승이 어찌 같은가?

라고 생각하다가

 

하기야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매실주 한 병을 바닥냈다.

 

 

   (<시와 정신> 2009.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