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스크랩] 임보 시집 <가시연꽃> 에서 5

운수재 2009. 10. 16. 03:18

 

    임보 시인  

    시집  < 가시연꽃 >  

 

해변의 순교자들 / 임보

 

내장도 눈깔도 다 빼앗기고 

바람과 햇볕에 몸을 내맡긴 

일사불란한 저 순백의 순교 

덕장에 매달린 오징어 떼

 

* 덕장에 매달린 수만 마리의 오징어 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들이 저지른 이 만행의 업보를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월인月印 / 임보

 

도동(道洞)*의 바닷가 적벽

만월은 떠 창해에 찍히고

굴껍데기에 술을 퍼

밤새워 파도를 마신다

 

* 도동은 울릉도에 있는 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길상사 느티나무의 말 / 임보

 

어제는

거문고 가락이더니

오늘은

웬 목탁 소리인고?

 

* 성북동 골짝에 <길상사(吉祥寺)>라는 절이 새로 세워졌다.

   유명한 요정 <대원각(大元閣)>이 있던 자리다.

   그 집의 여주인이 어느 스님에게 바친 것을 절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경내에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즐비히 서 있는데 그들의 몸통엔 몇 십 년 들어온 거문고

   가락이 스며 있을 것만 같다.

 

 

 우리들의 생애 / 임보

 

가을 한나절 햇볕같이 

은사시 가지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같이 

주전자에 잠시 끓었다 식은 맹물같이 

풀잎에 매달린 달팽이같이

 

* 인간의 한평생을 길게 잡아 백 년이라고 해도

   덧없기는 마찬가지다.

   홍안소년으로 볼이 붉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 무슨 봉두난발(蓬頭亂髮)이란 말인가.

 

Beads of Luck and Bottles Full of Happiness

 

병病 1 / 임보

 

거 뉘신가? 

내 육신에 몰래 스며들어 집 짓는 자 

내 뼈를 뽑아 서까래를 엮고 

내 살을 이겨 벽을 바르나 보다.

 

* 육신의 아픔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은 참 길기도 하다.

   때로는 대패로 밀고 망치로 못을 치는 것도 같다.

이빨 / 임보

 

모기가 사장을 물자 

사장이 부장을 물고 

부장이 과장을 물자 

과장이 사원을 물고

 

*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요인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새로운 요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 간다. 마치 물결처럼

   끝없이 번져 간다. 세상은 수많은 물결들이 뒤엉킨

   그물과도 같다.

 

 

 

 

 

 

 

 

 

 

 

 

 

 

 

 

 

 

 

 

 

 

 

정치 / 임보

 

 

정의는 지배자의 통치수단이요 

 

법률은 권력자의 보호막이다 

 

우중을 잠재우는 민주주의여 

 

세상은 언제나 힘이 다스린다

 

 

* 이 지상에 민주주의는 이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의’라는 것도 ‘법률’이라는 것도 늘 힘 있는 자의

   편에서만 그 기능을 발휘한다.

 

 

Wase Market near Dali (China)

 

 

시詩 바겐세일 / 임보

 

이백만 원 들여 여행을 하고

시(詩) 다섯 편 얻었으니

한 편에 원가가 40만원이다

세일이다! 누구 살 사람 없나?

 

* 99년 여름 아내와 함께 모처럼 여행을 했다. 

  벤쿠버로부터 토론토까지 일주일 동안 거대한 대륙을 횡단했다. 

  그리고 얻은 건 팔리지 않는 다섯 편의 시밖에 없다.

 

 

재미있는 세상 / 임보

 

병이 없으면 의사는 망하고

죄가 없으면 검사도 망한다

화재 때문에 소방서는 살고

해커들 덕분에 백신이 팔린다

 

* 악(惡)이 나쁘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은 역기능의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악(善惡)은 인간의 시점에서 보는 판단이지

   절대적 시점에서는 좋고 나쁨이 따로 있지 않다.

 

 

상 도적 / 임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적은 어떤 놈인가?

백주에 은행을 턴 날강도인가?

하루아침에 나라를 삼킨 혁명도당인가?

아니, 온 세상 뒤엎으려는 저 해탈승일세. 

 

* 강도는 겨우 금고 속의 금은보화나 훔치는 족속

   이지만, 혁명도당은 한 나라를 집어삼키니 도적

   치고는 상 도적이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진짜로

   큰 도적놈은 온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자다. 

   해탈(解脫)은 벗어남이 아니라 먹어치움이다.

 

LOOKING FORWARD, LOOKING INWARD

 

상습 지각생 / 임보

 

30 때는 20 생각  

50 때는 30 생각 

환갑에 들어서도 

내 동갑 못 따르네.

 

* 나는 늘 내 동갑쟁이들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세상살이에 매양 뒤쳐질 수밖에 없다.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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