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스크랩] 손의 언어 외 / 임보

운수재 2009. 11. 6. 13:52

 

손의 언어 / 임보

 

주먹을 불끈 쥐면 분노
두 손을 비비면 애원

움켜잡으면 욕망
가만히 내밀면 구걸

쓰다듬으면 애무가 되지만
어깨 위로 들어 흔들면 작별

하나의 검지로 사람들은
지시, 선택, 야유, 고발을 한다

엄지를 세워
공중으로 쳐들면 으뜸
지상으로 내리꽂으면 죽임

엄지와 검지만을 둥글게 맞대면 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면 음부

새끼손가락은 은밀한 여인
엄지는 우두머리

때로는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총이 되기도 한다

아니, 귀가 닫힌 이들은
두 개의 손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을 빚어내던가.

(우이시 제212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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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행적 / 임보

 

어떤 손은 계산기를 두들기고
어떤 손은 목탁을 두들긴다

 

칼과 창을 벼르는 손도 있고
삽과 호미를 만드는 손도 있다

 

한때는 화투를 쥐던 손이
한때는 붓을 잡기도 한다

 

올무를 놓는 손도 있고
오라를 푸는 손도 있다

 

진주를 찾으려 시궁창을 헤집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폭탄의 뇌관을 열기도 한다

 

밤에는 은밀한 샅을 더듬던 손이
낮에는 거룩한 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페미니즘 / 임보

 

여성이 약하다고 부르짖지 말라
세상에 약한 여성은 없다

어느 장군도
어느 제왕도
여성의 샅에서 태어나지 않는 자는 없다
신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어떤 불경의 사나이도
밤이면 지어미의 다리 아래 엎드려
한 마리 순한 짐승이 되고 마나니

근육질의 여성을 기르려는 욕망이여
부질없고 부질없도다
지배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녀들의 발아래 있다

여성, 이 지상의 어머니들은
그가 만든 모든 인간들의 정결한 눈물로
꿈이 되고
사랑이 되고
신앙이 되고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태후이며 왕비인 여성이여
굳이 제왕으로 군림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은 그대들의 손안에 있다.

(펜문학 2005년 가을호)

 

 

사람의 몸값 / 임보

 

금이나 은은 냥(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근(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일급(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연봉(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 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만일
몇 백의 돈에 움직였다면 몇 백 미만이요
몇 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 억 이상이다

세상에는
동장의 자리 하나에도 급급해 하는 자가 있고
재상의 자리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도 있다

사람의 몸값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결정한다

 

 

못 / 임보

 

내 젊은 시절 한 짓은
못을 박는 일이었네

 

한 여인의 연약한 심장에
매일 구멍을 뚫었네

 

청춘도 사랑도 다 잃고
가난과 싸우던 가련한 여인

 

청맹과니 한 아들에게
이 세상의 문을 열어준 댓가로

 

그녀는 천 개의 못에 박혀
드디어 가라앉고 말았네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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