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스크랩] 꽃구경 외 / 임보

운수재 2009. 11. 6. 13:54

 

꽃구경 / 임보

그제는 김제의 청련사 백련을
어제는 전주 덕진호의 홍련을
오늘은 시흥 관곡의 가시연을
며칠 연꽃에 묻혀 해롱이다가
문득 바다 생각이 나
오이도 갯가로 달려갔네
술집 다락에 올라앉아
물을 보는 맛도 괜찮아라
난초 향기 나는 친구와 더불어
연변 아지매가 구워준
조갯살에 소주 씹으면서
두고 온 연꽃봉오리 생각하며
한나절 보내는 것도 삼삼해라

 

Untitled

 

 

연밭에서 / 임보

1
수만 평의 연밭에 빼곡이 들앉은 수만 그루의 연들을 보고 있노라면,
광화문 네거리 맨땅 위에 주저앉아 붉은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수만 명의 붉은 악마들이 떠오른다.
붉은 악마에 맞선 푸른 승려군단 같다.
어디서 무슨 경기를 벌이고 있기에 뙤약볕에 나앉아
저리도 눈부신 축포를 터뜨리며 이리 야단법석이란 말인가.
천상의 어느 연화세계에서 지금 신나는 축구경기라도 벌이는 모양이다.
은하컵을 놓고 <전갈>과 <사자>가 한판 맞붙고 있는가?
대형 중계 스크린을 걸어놓지 않아도 그들은 잘 보고 있는 듯,
하기사 솥뚜껑 같은 푸른 원형 안테나를 제 각기 몇 개씩 매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귀가 먹어 그들의 왁자지껄한 환호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개구리 놈들은 연상 알아차리고 여기저기서 툼벙 점벙 난리들이다.

2
연밭에 수만 그루의 연들이 푸른 잎을 앞세우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방패 뒤에 숨어 포진을 하고 있는 중세의 병사들이 생각힌다
무엇을 향해 저리 삼엄한 진을 치고 있단 말인가
빛의 화살들이 푸른 방패 위에 쏟아져 내린 걸 보노라면
천상의 어느 군병들과 힘을 겨루고 있는 것만 같다.
진중에선 붉은 나팔들이 여기저기서 터지며 진군을 보채지만
한 발짝도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놈은 없다.
제트기처럼 날랜 제비들이 허공을 스치며 지나가고
몇 놈의 잠자리들이 헬리콥터 시늉을 하며 맴돌아도
무저항의 평화군단은 미동도 없다
종일 화살을 날리다 지친 천상의 군병들도
어쩌지 못하고 마침내 노을 속에 붉게 묻히고 만다.

 

(우이시 제221호)

 

Tales from the lake - 2

 

 

맛 / 임보

관매도 매몰도 만재도 거문도
섬 좋아한 사람들 섬 얘기다
내가 보기에는 그 섬이 그 섬 같은데 하면
이 무식한 놈, 물소리 바람소리 안개며 인심이며
한 섬의 아침저녁도 한결같지 않거늘…
허긴 그럴 일이다

설렁탕 곰탕 육개장 국밥
음식점 진열장에 음식들이 즐비하다
한 끼 배부르기는 그것이 그것일 걸 하면
이 멍텅구리, 짜장면 하나도 그 맛들이 다 다른데
간짜장 옛날짜장 삼선짜장 모르냐?
허긴 그럴 일이다

춘자 옥자 명자 말자
여자들 좋아한 놈들 여인 편력 자랑이다
여자들 그것 다 마찬가지일 텐데 하면
이 등신아, 질고 마르고 물고 당기고
여자들 맛이 어찌 한가지란 말이냐?
허긴 그럴 일이다

소주 정종 배갈 양주
뭘 마실까 주태백이들 야단이다
뭘 마시든 취하긴 마찬가진 걸 하면
이 쑥맥아, 양주면 다 양주냐 위스키 브랜디
코냑도 코냑 나름, 나폴레옹 엑스트라…
허긴 그럴 일이다

그런데 어떡하지?
그 별미들 다 맛 볼 겨를 없으니
허기사 매일 먹는 밥맛도 다 모르고
한평생 데리고 산 아내도 채 모르거늘

(스토리문학 2006. 9.)

 

"Me and my Met"

 

도우미 임보

건강검진을 가서 검진표를 기록하려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자기가 써 주겠다고 나선다
보아하니 눈도 잘 보일 것 같지 않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던 모양이다

담배는 요?
피우다 끊은 지 20년이 넘습니다
술은 요?
하루에 소주 한 컵
한 컵?
(기록카드의 단위는 병인데 컵이라니 헷갈린 모양)
옆에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도우미 여인이
한 병!
(이라고 거든다)
아니, 병이 아니라 컵인데
병보다는 컵이 작다는 생각으로 내가 항변한다
컵도 컵 나름이지 두 홉이야!
자신의 주량을 자신 있게 말하듯
도우미의 도우미가 지지 않는다

하기사 컵 하나 채워 놓고 절반쯤 마시다가
더 따르는 수도 있으니
그 도우미의 진단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스토리 문학 2006. 9)

 

OK you got our attention, now what do you want?

 

 

무섭다임보

 

바닷가엔 물이, 산 속엔 불이
도시엔 수레가, 광야엔 짐승이…
그러니 어디서 산다?
목숨을 내놓고 살 수밖에


* 얼마 전엔 쓰나미라고 하는 해일이 동남아 해안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또 얼마 전엔 화마가 강원도 산간지대를 폐허로 만들고 말았다.
도시도 들판도 이 지상에 안전한 곳이란 없다.

 

Pushkar, reading mantras on lake side

 

솔개 / 임보

솔개가 한 40년 살면
깃은 무거워 날개는 처지고
부리는 구부러져 가슴에 묻힌다고 한다.
그러니 높이 날기도 어렵고
사냥감을 물어뜯기도 힘들어
서서히 죽어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의지를 지닌 어떤 놈은 이때
높은 벼랑에 올라 환골탈태의 수련을 쌓는다.
제 몸의 낡은 털과 깃을 다 뽑아낸 다음
스스로 제 부리를 바위에 쪼아 부숴뜨린다.
그리고 한 반 년쯤 뜨거운 햇볕 아래
단식(斷食) 독공(篤工)의 고행을 쏟다 보면
헌 몸에 털과 깃이 새로 나고
빠진 부리의 자리에 새 부리가 돋는다.
그래서 다시 한 30년을 더 살게 된다는데

내 머리도 다 세고 이도 다 빠지고
팔다리도 힘을 잃어 휘청거리니
나도 어느 벼랑의 바윗돌 하나 얻어
한 달포쯤
헌 몸 비비고 머리도 부딪다 보면
혹 머리 다시 검어지고 이빨도 새로 돋아
흐린 눈도 맑아질는지

맑은 하늘에 높이 떠가는
한 마리 솔개를 본다.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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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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