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산방동동

은빛 성의 노래

운수재 2010. 2. 10. 08:10

 

 

 

 

은빛 성(城)의 노래           임보

 

 

 

성이 있었다.

은빛 나팔 소리를

머금고 있는

높은 성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웃들의 끈을 끊어

악습(惡習)의 고막을 깨뜨렸을 때,

나팔 소리는

일만 옥타브쯤 높은 음계로

우리들 영혼의 통로로 스며 왔다.

 

일상의 젖은 옷을 벗어

우리들의 시력을

스스로 포기했을 때,

성은

만월처럼 영겁의 어둠을 뚫고

드러났다.

 

손과 발,

더운 심장을 헐어

우리들의 체온을 떠났을 때,

그리고 가녀린 사념의 날개마저도 찢어

스스로의 비상(飛翔)을 단념했을 때,

성은

그 무거운 문을 열어

우리를 안아 올렸다.

 

밝은 날 아침,

우리는 성 위에서 문득 보았다.

우리가 버렸던 모든 것들이

은빛 나팔이 되어

빈 성을 가득 넘치게 하는 것을…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성주(城主)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