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장닭설법

팔대산인의 새

운수재 2010. 3. 1. 06:02

 

 

 

 

팔대산인(八大山人)의 새

                                                                  임보

 

 

깃이 헐고

목이 쉰

마른 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북천(北天) 기슭에서

내 품으로 추락해 왔다.

 

그 새는

삼동(三冬)에

오장(五臟)과 두부(頭部)를 쪼아

내 가슴 깊숙이 알을 슬고는

노을처럼 붉게

죽어 갔다.

 

그리고 내게는

밤마다 산월(産月)이 왔다

부화된 새끼새들이 한 마리씩

내 등뼈를 뚫고 일어서는…

 

나는

비겁의 더러운 손톱으로

고 노란 새끼새들의 목을 눌러

무덤을 쌓고

밤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평온(平溫)을 지었다.

 

--허나 이른 봄

무덤 속에서 날아오른

새떼들이

검은 소나무 가지마다 울음을 심어…

 

나무는

홍역(紅疫)의 더운 싹을 토해

천의 하늘을

송화(松花)로 뒤덮고는

이윽고

나의 두 눈을 빼앗아 갔다.

 

 

  * 팔대산인(八大山人) : 청나라 초기의 승려 화가, 명나라 왕족의 후예. 외로운 새를 즐겨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