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산방동동

한밤에 먹을 갈면

운수재 2010. 3. 23. 06:30

 

 

 

 

한밤에 먹을 갈면

 

                                                임보

 

 

한밤에 먹을 갈면

벼루가 눈을 뜬다.

 

벼루는

뿔이 낮은

열 두어 마리의 들소들이

울어대는

초원(草原)이기도 하고,

 

산수유꽃 향기가

벼랑을 타고 내리는

계곡,

 

혹은

청새우 몇 마리,

맑은 물새 그늘을 담고 있는

강이기도 한다.

 

아니 그것은

강이면서 산,

꽃이면서 새,

소리요 내음으로

모든 있음의 손짓

천상(天上)의 음계(音階)를 품고 있다.

 

벼루에

먹을 갈면

뼈가 시리도록

내가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