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필봉(筆鋒)

운수재 2010. 9. 20. 08:16

 

 

 

 

필봉(筆鋒)

                                     임보

 

 

붓이 창보다 무섭다고 한다

언론의 힘을 갈파한 말이다

 

예리한 필봉에 찔리면

하루아침에 재벌도 무너지고

재상도 목이 달아나는 수가 있다

 

그러니

붓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는

붓의 힘만 믿고

한평생 그놈을 붙들고 필력을 길렀다

 

전가(傳家)의 보검(寶劍)을 꿈꾼

광야의 검객처럼

허공을 베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은 내 필봉을 거들떠도 안 본다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겁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붓이 너무 무딘 걸까?

 

지금껏

내 필봉에 떠는 사람은 오직 하나

 

자신의 얘기를 함부로 세상에 떠벌리지 말라고

애걸하는

 

허약한

내 아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