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캄보디아 기행시 해설

운수재 2010. 11. 12. 09:44

 

 

 

[자작시 해설]

캄보디아 기행시들

                                                          임 보

 

 

신작시 특집의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고 해서 기왕이면 같은 성향의 작품들을 묶어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1월 여행에서 얻은 글들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기행시들을 놓고 다른 분에게 의뢰해서 해설을 붙인다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손수 몇 자 적기로 했다.

 

금년에 아내가 고희를 맞는 바람에 그 기념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아이들의 권유에 따라 선택한 곳이 동남아였다. 동남아라지만 더 정확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를 보고 싶어 선택한 것이다. 2010년 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우리 내외는 5박 6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활공」은 서울에서 프놈펜으로 날아가는 기내의 정황이다. 아이들의 배려로 모처럼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5시간 반이 넘는 체공 시간도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중세의 어느 제왕도 누릴 수 없었던 호사를 오늘의 평민들은 돈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영하 50℃가 넘은 고공을 날아가며 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와인 잔을 기울이며 미녀들의 시중을 받을 수 있다니 어느 신선의 삶이 이렇겠는가. 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느끼면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돈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프놈펜에서 1박한 후 시내에 있는 프놈펜 왕궁을 관람하고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 시로 이동을 했다.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4시간이 소요된 거리다. 가끔 야자수들이 늘어서 있고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황량한 들판을 달린다. 원두막 같은 집들이 지상에 몇 개의 기둥을 받치고 공중에 떠 있다. 우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들 염려가 있어서 그렇게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가 습기나 뱀 같은 짐승들을 피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같이 보였다. 이곳 가옥의 역할은 비를 막고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는 것이 주 임무인 것이다. 그런데 원두막 같은 집들 앞에 작은 연못들을 만들어 놓고 몇 송이의 연꽃을 피우거나 몇 마리의 오리를 기르고 있는 것이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집」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가옥을 스케치한 것이다.

 

앙코르 유적들은 씨엔립 시 북쪽 5.5km 떨어진 밀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12C 초 크메르제국의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30년 동안 축조되었다는 거대한 석조 사원인 앙코르 왓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 밖에도 12C 후반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왕궁 앙코르 톰 등 수많은 사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앙코르 왓은 애초 비슈누 신에게 받쳐진 힌두교 사원이었다고 한다. 사원의 입구나 다리의 난간 앞뒤에 '나가(Naga)'라는 수호신상을 세워 놓았다. 코브라처럼 머리를 쳐들고 있는 사신(蛇神)인데 하나의 몸통에 여러 개의 머리가 달려 있다. 머리의 수에 따라 능력도 다르나 보다, 삼두사, 오두사, 칠두사 등 다양하다. 「나가」는 앙코르 왓 서문(西門) 앞 해자(垓子)를 건너는 다리의 입구에 세워진 칠두사 석상을 읊은 것이다.

 

앙코르 왓 동쪽 문으로 빠져 나오는데 나무 밑에 두 마리의 하얀 동물이 풀을 뜯고 있다. 무슨 짐승인가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소다. 흰 소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다가, 이내 빛깔이 다르다고 해서 기이해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볍게 써 본 것이「白牛」다.

 

캄보디아에서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툭툭이'라는 것이다. 인력거를 오토바이가 끄는 형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동하기 편하고 좌우가 툭 트여서 관광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타프롬 사원은 앙코르 툼을 세운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립되었다. 앙코르 툼 곁에 자리한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사원인데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한 불교 신전이라고 전한다. 중앙에 있는 원형 홀의 벽에는 수천 개의 보석이 박혀 있던 구멍들이 하늘의 별무리처럼 뚫려 있다.

타프롬 사원은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밀림의 수목들이 침투해 들어와서 폐허가 되어 있다. 아름드리 거대한 스펑나무들이 사원의 지붕과 복도 담장 할 것 없이 마치 문어발처럼 감고 돌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나무들을 제거하면 사원이 무너질 것이므로 복구를 할 수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딱한 처지라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문둥병에 걸려 여생을 두문불출하고 지냈지만 9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고 전한다. 천형의 문둥병에 걸린 것은 왕궁과 사원들을 축조하면서 너무 백성들을 혹사시킨 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장수한 것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서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천하를 군림하던 크메르왕국도 몇 세기를 버티지 못하고 1431년 타이의 침공을 받아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앙코르의 유적들은 밀림 속에 그 잔해만 간직한 채 암흑 속에 묻히게 된다.

작품 「타프롬 사원」은 앙코르 유적들이 어떻게 수세기 동안 밀림 속에 갇히게 되었는가 하는 그 과정을 자야바르만 7세의 문둥병과 연결을 하여 설화의 형식으로 구성해 본 것이다. 말하자면 타프롬 사원에 새로운 전설을 하나 만들어 붙이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얻은 작품은 겨우 이 한 편이다.

 

그리고 아직 다루지 못한 두 사원이 내 시의 과제로 남아 있다.

힌두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회랑의 벽에 정교하게 부조해 놓은 거대한 규모의 힌두사원인 앙코르 왓과 다른 하나는 앙코르 툼의 중앙에 위치한 수백 개의 웅장한 보살 인면상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불교사원 바이욘이다. 대상들이 너무 웅장해서 어떻게 글로 다룰 것인가 망설이다가 그만 손을 못 대고 있다. 기행시는 벼르지 말고 바로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새로이 갖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시의 감흥이 점점 흐려져서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시 2010.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