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1호차를 몰던 때

운수재 2013. 2. 22. 11:17

 

 

 

1호차를 몰던 때

                                            임 보

 

 

내 생애의 황금기는 스물한 살 적의 군대였지!

 

상병인 내가 한 계급 올려 갈매기 계급장을 붙이고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빌려)차고 영내를 주름잡았지

위병소의 병장․하사들도 내 앞에서는 벌벌 기었지

말똥 세 개짜리 연대장의 1호차 운전병이었으니까

 

주말에 으스대고 피엑스에 들어서면 술렁거렸지

상품 진열대를 기웃거리다가

새로 들어온 초코릿 상자라도 보이면 추켜들었지

그러면 판매 담당병이 달려와 매달리며

선임하사께서 외상 주지 말랐다고 애걸복걸했지

 

피엑스 외상장부에 달린 내 외상값이

봉급의 30배를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

(상병의 봉급이래야 겨우 180원에 불과했지만)

 

그렇지만 난 시치미를 떼고

각하님 사냥*에 가져가실 거라고 공갈을 치기도 하고

서울서 내려오신 사모님* 부탁이라며 둘러대기도 했지

지프차의 운전석 밑엔 늘 내 노획물로 가득했었지

 

제대 말년엔 말뚝을 박을까*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고향마을 순이 생각 때문에 그냥 때려치우기는 했지만

나도 한때는 떵떵거리며 깃발 날리던 적이 있었지

 

* 사냥 : 연대장은 멧돼지며 고란이 사냥을 즐겨했다.

* 사모님 : 연대장 부인

* 말뚝 박다 : ‘직업 군인이 되다’의 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