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파를 심다가
운수재
2013. 7. 13. 02:46
파를 심다가/ 임보
어제 아내가 재래시장에서 사온
어린 파 두 단을 묶어 들고
아침 일찍 효문농장 텃밭을 찾아간다
열무와 상추를 뽑아낸 자리에
무엇을 심을까 망설이다
파를 심기로 작정한 것이다
잡초를 뽑아내고 땅을 고른 다음
꽃삽으로 파 한 뿌리씩 심어 나가는데
옆밭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참견을 한다
잎은 잘라버리고 비스듬히 눕혀 심어도 된다고
심었던 파들을 다시 뽑아 잎을 자르고 나서
(가지[茄]를 따려고 가위를 지참하길 잘했다)
고랑을 만든 다음에 눕혀서 묻는다
거의 다 심어갈 무렵쯤
뒷밭의 여인이 건너와 살펴보더니 한마디 한다
장마철에 눕혀 심으면 물커지기 쉬우니
이렇게 푹 파서 깊이 심으라고―
내 꽃삽을 빼앗더니 손수 시범을 보인다
눕혀 묻었던 파들을 다시 뽑아 깊이 심는다
(몸살이 났는지 파들이 이미 축 늘어졌다)
이렇게 세 번째 한참 옮겨 심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노인이 지나다 또 거든다
거름과 붓을 해 주려면 간격을 넓히라고―
그러면서 그 노인 묻기를
여기에 무나 배추를 심지 않겠느냐고 한다
(8월 하순쯤 무 배추를 심을 자리에
7월에 파를 심는 건 이미 늦었다는 투다)
파 두 단을 한나절 내내 뽑았다 심었다 하며
아픈 허리를 잠시 펴고 생각한다
(파 하나 심는 것도 이렇게 까다롭거늘
하물며 나랏일 펼치려면 얼마나 말들이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