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삽교천 노래/ 임보

운수재 2013. 10. 15. 05:17

 

 

삽교천 노래/         임보

―律․15

 

 

누님 보았지, 그 누님 만났지

삽교천 짠 바다 갯둑에 가서

봄바람 포장마차 낙지집에서

쑥대처럼 쇠어 있는 누님 보았지

꿈에서도 못 보던 누님 만났지.

 

나라도 말도 잃던 풋고추 시절

전라도 돌밭 한많은 고을

짚세기 나막으로 보릿고개 넘던 때

자전거 흰 운동화 검은 세라복

주조장집 고명딸 우리들의 꿈

 

눈썹도 눈썹도 세상천지에

그 누님 만날까봐 가슴도 죄며

목련화 기우는 담장 아래서

유성기 소리를 훔쳐 들었지

해지도록 숨죽이며 애도 태웠지.

 

무덥던 어느 6월 난리 왔을 때

밀썰물 몸살에 미치던 세상

누님집 높던 담 무너지더니

군인 따라 서울로 시집갔다는

눈 아픈 소문에 잠도 설쳤지.

 

철들자 우리도 고향 버리고

돈 찾아 사랑 찾아 흩어져 갔지

동두천, 청량리, 西仁川 부두

한 삼십 년 구르고 굴러

손바닥 못 키우며 바람 타고 다녔지.

 

그러다가 지난봄 거길 갔었지

바다 막아 다리 놓는 삽교천 둑

갯가 포장 밑에서 그를 보았지

갯바람 장아찌로 절여진 누님

그 누님 손을 잡고 바달 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