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나를 너무 띄우지 말라

운수재 2013. 12. 26. 07:34

 

 

나를 너무 띄우지 말라

                                                  임보

 

나도 가끔 백일몽에 빠진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내가 만일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면……

예를 들어 그 위대한 노벨상이라도 타게 되어

하루아침에 내 팔자가 180도 달라진다면

내 인생이 더 행복해질까?

 

국내외의 수많은 출판사들은

내 책에 대한 출판권을 따내려고 아귀다툼일 것이고

여기저기 대학에서는 내 강의를 듣고 싶다고

시간을 내달라며 줄을 설 것이며

해외의 세미나들은 그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나를 초대하기 위해 혈안일 것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밖에 나가면 내 얼굴을 알아본 시민들이

나를 에워싸고 쉽게 놓아주질 않을 것이며

내 집 앞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들이 늘 장사진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될까?

몇 명의 비서진들이 내 일정을 조정하고

그들이 만든 스케줄에 의해 나는 움직일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모임에 나가

그들이 만든 연설문이나 축사를 읽고

그들이 선택한 명사들을 만나

인류 평화와 자선에 대한 그럴 듯한 담론을 나눌 것이다

 

온종일, 아니, 수주일, 수개월, 수년을

나를 잃어버린 이러한 삶이 행복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유명해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를 띄우지 말라!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나의 소망은

어느 꽃집의 고운 아가씨나 하나 점찍어 두고

아침저녁 혼자 오르내리면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