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하이옌
운수재
2014. 1. 2. 09:23
하이옌(Haiyan, 海燕)
임보
나는 아직 필리핀을 못 가 봤다
7천 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는 섬의 나라
과일이 풍부하고 물가가 싸다는 나라
영어에 밀려 모국어를 잃어가고 있다는 나라
더워서 옷이 별로 소중하지 않다는 나라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아직은 가난한 나라
한국으로 시집온 처녀들이 많은 나라
나는 그 나라에 호감을 갖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아낙>을
흐느끼듯 노래하는 통기타의 가수
프레디 아길라의 조국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 내가 아끼는 시인,
가난한 동산(東山)의 꿈이 서린 곳이라서 그럴까?
(그는 세브에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아름다운 꿈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2013년 11월 9일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밀려와
그 가난한 나라의 허리 타클로반을 강타했다
지상은 삽시에 넘치는 해일로 폐허가 되고
1만 명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갔다
신이여 당신은 왜
꿈이 서린 그 가난한 나라에
하이옌을 보냈는가?
아길라의 소망인 민주주의를 보내지 않고
동산의 꿈인 낙원을 허락하지 않고
왜 하이옌을 보내 그 땅을 헤집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