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추락한 은빛 연못

운수재 2014. 5. 8. 09:11

 

 

 

추락한 은빛 연못

                                                     임보


한 아파트 폐품 쓰레기 더미에서
임보의 시집 『날아가는 은빛 연못』을 주웠다며
자랑삼아 어떤 이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 시집이 태어난 해가 1994년이니
20년 동안 거친 세상 떠돌다 거기에 표류했으리
보나마나 표지는 헐고 활자는 퇴색되어
아마도 만신창이 남루의 행색이리라...

어느 선비의 서가에 가까스로 끼어 지내다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축출된 걸까?
아니면 어느 숙녀의 혼수에 묻어 왔다가
놓일 자리가 없어 버림을 받은 것일까?

…………………어느 추운 겨울 밤,
철새들이 잠자던 연못이 그만 얼어붙고 말았지,
새들이 다 얼어 죽고 말았을 거라고?
천만에, 다음날 철새들은 발목에 은빛 연못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날아가는 은빛 연못’

은빛 연못을 매달고 날아가던 그 시집이
발에 매달린 세상이 너무 힘겨워
그만 아파트 쓰레기장에 추락하고 말았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거두어 갈 이가 있다니
시를 쓰는 마음이 덜 외롭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