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송사리들의 회의/ 임보

운수재 2014. 8. 14. 02:59

 

 

 

송사리들의 회의

                                                             임보

 

어느 봄날 한낮

개울의 웅덩이에

몇 마리 송사리들이 모여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있다

 

갑) 큰 웅덩이에는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우리보다 수십 배나 큰 놈들이 살고 있어

(아마도 큰 붕어나 잉어쯤 본 모양이다)

을) 입이 째지고 긴 수염을 단 괴상한 놈도 있지

(메기나 빠가사리 같은 놈들 얘긴가 보다)

병) 물 밖에서 우릴 엿보고 있는 긴 부리 새들을 조심해야 돼

(황새나 왜가리 혹은 물총새 들에게 먹히면 큰일이다)

정) 저 아래 강물 동네에는 별놈들이 다 살고 있어

(큰 강물 속에는 얼마나 다양한 어족들이 살고 있겠는가)

무) 물 바깥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물 밖에 얼굴을 내밀고 뭍의 풍경을 구경할 수 없으니……)

 

자신들이 본 것들을 놓고 온종일 구수회의를 해 봐도

개울의 맨 끝에는 거대한 물의 세상― 바다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보다 수만 배나 큰 고래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더더욱, 지상의 산과 흐르는 구름

반짝이는 별들이 있는 세상을

그들이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