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죽 토벌 작전
탈옥죽(脫獄竹) 토벌 작전
임보
오늘 한바탕 싸움을 벌이느라
온몸이 파죽이 다 되었다
누구와 싸웠는지 궁금하신가?
대[竹]와의 한판 겨룸!
십여 년 전쯤에
운수재의 좁은 뜰에 오죽(烏竹) 한 그루 심었다
친구가 오죽헌*에서 가져온 거라며 주기에
신사임당 생각하며 잘 모셨던 것
대가 번식력이 강한 식물임을 익히 아는 터라
길쭉한 플라스틱 화분에 담아 마당가에 묻었다
겨울의 추위가 심할 때는 잎이 다 시들어
이듬해 몸살을 하며 가까스로 죽순을 밀어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오늘 아침 뜰을 치우며 어정거리고 있는데
능소화 곁에 아기 손바닥만 한 작은 잎이 돋아나 있질 않는가?
댓잎이었다!
대의 뿌리가 낡은 플라스틱 분 옆구리를 뚫고
밖으로 탈출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삽과 곡괭이를 동원해서 수색을 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화분을 비집고 나온 대 뿌리가 두어 발이나 떨어진
능소화 곁으로 포복을 하며 뻗고 있질 않는가?
아니, 이놈은 주유용 쇠파이프를 피해 그 밑을 뚫고
해당화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갔다
아니, 해당화를 넘어 백일홍, 백일홍을 넘어…
콜럼버스처럼, 마젤란처럼 미지의 세상을 향해
의기양양 탐험의 길을 가고 있었다
탈출한 뿌리는 발본색원
오늘 내게 능지처참의 처형을 받았다
긴 시간을 공들여 은밀히 탈옥한 그놈을
처단하는 일이 썩 마음 내키지는 않았지만
뜰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런데 이 오죽을 앞으로 감시 단속해야 할
새로운 분쟁거리가 하나 등장했다
* 오죽헌(烏竹軒) :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생가로 강릉에 있음.